포항시가 마련한 합동차례상으로 구색만 갖춰
‘차라리 연휴라서 다행’ 타지에서 찾아온 자녀들 수해복구에 고단
"아버지 이렇게 인사드려서 죄송해요. 내년에는 차례상 거하게 차려드릴테니 올해는 이걸로 참아주세요."
추석 당일인 10일 오전 7시. 포항시 남구 대송면 다목적복지회관. 아침부터 전과 과일 등 23가지 각기 다른 음식으로 꾸려진 차례상이 차려졌다. 경북 해안가에서는 꼭 빠지지 않는 문어도 올라오며 나름 풍성한 추석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차례상이 차려질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던 30여명의 주민은 단 한 명도 명절 분위기를 자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음식이 하나씩 올려질 때마다 가슴이 답답한듯 한숨을 쉬거나 아예 몸을 돌려 구호텐트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상차림을 지켜보던 한 어르신은 "이렇게 준비해 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속상해 하실까"라며 고개를 저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간 남구 대송면 제내리에는 갑작스레 불어난 물로 1천135가구·2천1명(포항시 조사결과)의 주민 중 약 90%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야 제각기 자녀들이나 친척들의 집으로 몸을 피했지만, 여전히 임시구호소인 대송다목적복지회관에만 100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낮에는 복구작업을 펼치고 밤마다 힘든 몸을 뉘이고 있다.
포항시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10일 대송면 다목적복지회관에서 '명절 합동 차례상'을 차렸다.
포항시 관계자는 "추석 명절을 맞이했지만 유례없는 폭우와 침수피해를 가져온 태풍으로 인해 고향집에 머물지 못하는 피해 이재민들을 위해 합동 차례상을 준비함으로써 작은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차례상을 위해 포항시는 전날인 9일 이재민들에게 뜻을 물어보고 대부분 주민이 원하자 이날 합동 차례상을 마련했다.
차례음식 역시 문어와 돼지고기, 생선, 과일 등 23가지 제수용품을 이재민들의 요청에 맞게 진열했다. 차례상이 차려지자 곧바로 30여명의 이재민들은 번갈아 가며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차례가 진행되기 직전까지 복구작업을 벌이느라 온몸에 흙을 묻히고 절을 올리는 주민도 적지 않았다.
여자로서는 유일하게 차례상 앞에 나선 박경자(62) 씨는 술을 올리고 절을 하면서도 연신 새어나오는 울음과 훌쩍이는 코를 닦아냈다.
박 씨는 "수해가 난 당일에는 어떻게든 정신을 추스리느라 참았는데 이렇게 조상님 앞에 서니 서글퍼진다"면서 "그래도 많은 분들이 도와줘서 (침수물품을) 대충 치웠다. 내가 울면 오늘 내려온 자식들이 슬플테니 애써 참을려고 한다"고 눈물을 훔쳤다.
본격적인 나흘간의 연휴가 시작됐지만,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온 자식들도 쉴 수는 없었다. 아예 낡은 운동복을 입고온 사람들은 어린아이 오줌처럼 가늘게 나오는 수돗물을 틀어놓고 가재도구를 닦아내고 벽지를 뜯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다.
서울에서 왔다는 윤정호(42) 씨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연휴 하루 전날(8일) 아침에 내려왔다. 집이야 어떻게되든 어머니가 무사하셔서 다행"이라며 "당뇨와 고지혈증 등 어머니가 잔병이 많으시다. 지금도 기운이 없으셔서 구호소에 누워계시도록 했는데 부디 시름을 딛고 건강을 챙기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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