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240호 추정…'침수 우려' 서구 중리동·비산동 16곳으로 가장 많아
제11호 태풍 '힌남노' 북상으로 침수 대책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
"비가 한창 많이 내렸을 때 반지하 방에서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고 느꼈어요."
사회 초년생인 A(30) 씨는 대구 달서구 송현동에 있는 거실에 방 한 칸이 전부인 월세방에서 생활한다. 반지하 형태의 주택이라 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아 항상 불을 켜야 한다.
A씨는 저렴한 월세 탓에 불편해도 오랫동안 반지하에서 살았으나 최근 집 안까지 물이 들어와 컴퓨터, 음악 장비 등 고가의 물품이 망가지는 침수 피해를 입었다. A씨는 같은 건물의 지상층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A씨는 "뜯어진 벽지에 들뜬 장판까지 아늑해야 할 집안이 흉물스럽게 변했다"며 "집주인도 이번에 서울 침수 피해를 보고 반지하를 더 이상 주거용으로 임대하지 않고 창고로 놔두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수도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가족 3명이 고립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대구도 반지하 주택을 대상으로 한 침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매우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국내에 상륙하는 등 올해도 가을 태풍이 잇따를 것으로 보여 대책 마련이 더욱 시급한 상황이다.
◆영화 '기생충' 반지하 주택, 대구 240곳
대구시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게 하는 반지하 주택은 대구 전체에 모두 240곳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구·군별로 파악된 자료조차 없는 실정이다.
지하층을 거실로 사용하는 주택인 '반지하'는 저소득층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1970년대 등장했다. 건축물 바닥이 지표면 아래에 있는 반지하의 특성상 침수뿐만 아니라 일조량 부족, 습기, 결로 등 실내 오염에도 취약하다.
특히 집중 호우로 인해 지상이 침수되면 반지하 주택 거주자가 가장 먼저 고립될 확률이 높다. 지난해 발간된 경기연구원 반지하거주환경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침수 피해 주택 중 90%가 반지하로 조사됐고, 반지하 거주자 500가구 중 절반 이상이 침수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서울에서 반지하 주택의 침수 피해가 잇따르자 최근 대구시도 침수 피해 우려가 있는 반지하 주택들을 찾아 나섰다. 과거 침수 피해 사례 등을 종합하고 현장을 둘러본 결과 240곳이 침수 우려 주택으로 선정됐다.
특히 지어진 지 40년 이상된 건물이 다수 분포하고 있는 서구의 중리동과 비산동 일대가 16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 밖에도 수성구 만촌동과 황금동 4곳, 동구 방촌동 3곳, 달서구 송현동 1곳으로 파악됐다.
다행히 대구에선 반지하 주택을 거주용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점차 줄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수성구에서 반지하 매물 거래를 하고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주거용으로 반지하를 찾는 사람은 요즘 거의 없는 탓에 공실이 많이 생기고 있다"며 "특히 수성구뿐만 아니라 동구, 서구 쪽도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반지하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도시주택국과 복지국이 반지하 주택 침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계속 협의하고 있다. 빠른 시일 안에 대책이 마련될 것"이라며 "과거 침수 지역 위주로 점검을 시행하고 있고 침수 시 보상 제도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침수방지시설이라도 지원해야"
반지하 주택은 저소득층, 청년 등 주거 취약 계층을 상징하기도 한다.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이어졌지만 해결은 쉽지 않았다. 법으로 금지하거나 신축 허가를 제한하는 방안도 거주자를 고려한다면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지난 2020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반지하 거주 가구는 37만9천605가구로 이 가운데 42.7%가 기초생활수급 가구 혹은 청년 가구로 주거 취약 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는 수도권에 비해 반지하 주택이 많지 않지만 열악한 환경만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구의 반지하 240곳 중 최소 주거 면적, 필수적인 설비 기준, 안전성, 쾌적성 등의 기준이 포함된 최저주거기준 미달에 해당하는 곳은 26곳(10.83%)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최저주거기준 개편을 통해 '반지하'의 주거 환경 질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2020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최저주거 기준의 내용과 개선과제'보고서에서는 주거기본법상 최저 기준에 '방음·채광·환기'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음을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이 점을 비판하고 3차례 조정 권고도 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주재승 책임연구원은 "실질적으로 반지하에 거주하는 분들의 경제적 여건이 어렵기 때문에 차수벽, 모래주머니 등 침수방지시설을 개인이 설치하기는 힘들고 건물 소유자도 협조적이지 않다"며 "반지하 거주자분들을 한 번에 이주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이러한 사실들을 잘 고지하고 미리 사전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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