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북성로 레트로

입력 2022-08-17 09:38:20

임진형 대구챔버페스트 대표

임진형 대구챔버페스트 대표
임진형 대구챔버페스트 대표

나는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서 떨어지는 빗소리 듣는 것을 좋아한다. 뇌과학자들은 모든 예술 행위의 시작점은 뇌의 한 부분이고, 음악은 소리를 매개로 형성되는 예술의 한 분야라고 말한다. 아방가르드 대표 작곡가 존 케이지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음악이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자. 지하철 소리, 초인종 소리,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 계곡 물소리, 놀이터의 아이들 소리 등 우리가 흔히 '소음'이라고 일컫는 모든 것들이 감각 기관으로 들어오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음악이 된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자동차에 부딪혀 마지막 비명을 지르고 흘러내린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에 비견될 만큼 아름다운 음악이고 위로가 된다. 그런데 요즘 TV에서 갑작스런 폭우로 집을 잃으신 분들과 물에 잠겨 망가진 자동차들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비가 걱정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북성로에서 일하셨던 아버지에게도 여름철 장맛비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오래전 아버지는 북성로 대구은행 근처 작은 2층 건물에서 볼트와 너트 등 자동차 부품 판매를 하셨다. 그 북성로 가게에는 턱이 없다. 무거운 짐들을 차에 바로바로 운반하기 위해서다. 턱이 없어 아버지는 여름 장마철마다 비님이 아니라 '비놈'과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비가 들이닥치면 그 많은 공구들이 물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비와 씨름하고 인생과 씨름하고 한 가장의 무게와 씨름하면서 30년이 넘게 매년 아버지의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아버지가 계셨던 북성로 거리는 오토바이와 작은 트럭들이 가게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사람들이 겨울밤 싸락눈처럼 붐볐다. 그러나 지금의 북성로는 비어 있는 상점도 보이고, 퇴직하시고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만큼이나 빛이 바래 보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북성로를 위해 젊은 음악인들과 연기자들이 모였다는 점이다.

올해 중구 도심재생사업의 하나로 '북성로 문화플랫폼 활성화'를 위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라모아트컴퍼니(예술감독 임봉석)가 테너 노성훈, 연기자 김현지, 피아니스트 서인애를 비롯한 젊은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20일 오후 5시 중구 향촌문화관 '녹향'에서 '북성로 레트로 음악다방' 음악극 공연을 한다. 70, 80년대 많은 사랑을 받은 대중가요를 비롯해 한국 가곡에서 샹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옛날 북성로 거기를 회상하는 것을 생각하니 정말이지, 가슴 설레는 일이다. 사실 '녹향'은 우리나라 최초 음악감상실이며, 대구 예술가들에게는 아주 상징적인 공간이다. 6.25 전쟁 시기에도 예술가와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한 녹향이고 보면, 이번 공연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북성로 레트로 음악다방' 공연은 음악과 극의 구성으로 우리에게 북성로의 새로운 마중물이 되리라 본다. 북성로가 다시 북적거리는 차의 행렬과 오토바이 소리로 예전의 활기를 되찾으면서 또 새로운 문화의 거리로 알려지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