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윤석열 정부와 카산드라

입력 2022-08-09 19:42:52 수정 2022-08-10 10:02:59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기자들에게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기자들에게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사퇴했다. 그의 사퇴와 함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은 본격적인 논의조차 못 한 채 중단됐다.

윤석열 정부는 '바른 정책'이면 국민들이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윤 정부에 대한 낮은 지지도, 임명 당시부터 논란이 된 박순애 장관이 급하게 '만 5세 취학'을 내놓았다는 점 등 메신저의 약점을 간과한 것이다. 메신저가 나쁘면 메시지도 나쁘게 들리기 마련이다.

국가 정책에는 장점과 단점, 찬성과 반대가 있기 마련이다. 입장에 따라 장점과 단점이 상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엇보다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들이 있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현 교육정책이 아주 엉망일 리도 없다. 제도가 큰 무리 없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교육제도를 개선해야겠다고 판단했다면 속도를 조절하며 설명하고, 이해 당사자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카산드라(Cassandra)는 고대 트로이의 공주다. 그녀는 예지력(豫知力)이 뛰어났지만 불행하게도 말(言)에 설득력이 없었다. 트로이 성(城)을 공격하던 그리스군이 성 근처에 거대한 목마(木馬)를 만들어 놓고 떠났을 때 카산드라는 그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면 재앙이 닥친다고 예언했다. 그리스군이 철수했다고 생각한 트로이 시민들은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고 승전 잔치를 벌였다. 트로이 사람들이 잠들었을 때 목마에 숨어 있던 그리스군이 성문을 열었고, 트로이는 멸망했다.

대다수 국민은 혁명가나 지식인이 아니다. 국가 정책을 면밀히 파악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다수의 이익, 나라의 미래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설득하고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정치다.

대통령은 제도(선거)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지만, 권력을 실제로 행사하는 힘은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 지금 윤 정부에 시급한 것은 국민적 호감을 얻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호감 인물들을 2선으로 빼고 호감 인물을 전진 배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카산드라에서 보듯 설득력 없는 예지력은 쓸모가 없고, 만 5세 취학에서 보듯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한 권력은 실행 동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