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말

입력 2022-07-22 12:58:00 수정 2022-07-25 07:30:22

이선욱 시인(대구문학관 상주작가)

이선욱 시인(대구문학관 상주작가)
이선욱 시인(대구문학관 상주작가)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말이 있다. 주로 낯간지럽거나 남부끄러운 상황에서 쓰는 표현인데, 보기 부끄러울 정도로 촌스럽거나 민망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러는 손가락을 직접 오그리거나 꿈틀거릴 때도 있다. 그렇다고 아주 혐오스럽거나 반감이 들 정도로 불쾌하단 뜻은 아니다. 대부분 취향이나 유행에 맞지 않는다는 표현 정도로 통용되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대중문화나 마케팅의 영역에서 일부러 손발이 오그라드는 전략을 활용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개 '웃음'에 초점을 맞춘 것들인데, 이제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이나 인기를 얻는 경우도 꽤 흔하다. 말하자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마저도 웃고 즐길 수 있는 시대라는 뜻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나 분위기라면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종종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런 식으로 웃음을 의도하지 않은 경우다. 만드는 사람은 한껏 진지한 의도로 만들었는데, 정작 그걸 보는 사람은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할 때다. 대개 과거에 유행하던 드라마나 광고 등이 그 대상이 되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대상이 꼭 과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새롭게 선보인 기획이나 창작물 또한 그 의도가 어찌됐든 보는 사람을 '오그라들게'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차이는 있다. 과거의 그것들이 '그땐 그랬지'하며 시대나 관점의 변화로 이해되는 데 비해, 오늘날 그것들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의도나 전략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하물며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이나 행동조차도 때로는 누군가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의도나 전략보다는 어디까지나 받아들이는 사람의 반응에 달린 문제라는 뜻이다.

그런 반응을 의도치 못한 '웃음'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의도를 무시한 '조롱'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도 마찬가지 문제다.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눈에 띄는 점도 있다. 그건 이때마다 시대착오적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지닌 묘한 공통점이다. 그것들은 대개 그런 반응을 조롱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 상황을 결코 웃거나 즐기지 못한다. 사람들의 반응보다 구겨진 체면이 더 앞선 까닭이다. 다시 말해 시대착오적인 내용보다는, 그러한 태도가 더 '시대착오적'이라 여겨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오늘날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의 무게중심이 그것을 만드는 사람보다, 그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 중심으로 변화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말 역시 단순히 보기 부끄러울 정도로 촌스럽거나 민망하다는 뜻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조차도 웃고 즐길 수 없을 만큼,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경직된 태도로 모든 것을 만들고 또 수용해왔는지를 자각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직 표준어로 등재되지 않은 말이라는 점도 놀랍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