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
연꽃 향기가 깊고 진하다. 반야월 금호강가의 늪지와 함께 넓은 연지에 연꽃이 만개하였다. 숨을 깊이 쉴수록 연향은 더욱 깊이 들어와 몸에 가득 맑은 기운을 주는 듯 했다. 가끔 한 줄기 바람까지 묻어와 마음의 먼지를 씻어준다. 연지 한가운데로 낸 산책로 덕분에 시원한 연잎들이 가까이서 얼굴을 내민다. 넓은 잎들이 부딪히며 수런수런 옛이야기를 풀어내는 듯하다.
가까운 옛이야기로는 심청이 연꽃으로 환생하였고, 고려 시대 수월관음도나 아미타내영도 앞에 늘 연꽃이 놓여있었다. 고구려 시대의 벽화에는 천정과 벽면에 연꽃으로 가득한 묘실들이 많이 있다. 태양을 상징하는 연꽃이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연꽃 위에서 환생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연화화생(蓮花化生)은 고대부터 있어 온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4세기 인도의 아잔타 석굴벽화에도 홍련(紅蓮)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힌두교의 브라흐마, 시바와 함께 3대신 중의 하나인 비쉬뉴 여신은 늘 연꽃과 함께 있다.
이처럼 연꽃은 세계의 문화사에 다양한 상징으로 나타난다. 특히 연꽃은 조선의 선비들이 좋아하던 꽃 가운데 하나였다. 이는 중국 송(宋)나라 때의 대학자인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의 영향 때문이다.
연꽃은 '군자의 꽃'으로 큰사랑을 받았다. 또한 민가에서는 연꽃의 연(蓮)이 이을 연(連)과 같은 동음이기 때문에 영원(永遠)이라는 의미로 차용되었다. 그래서 자수 베갯모에 한 쌍의 다정한 오리와 함께 수놓은 것은 '영원히 다정한 부부의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가 된다.
태양을 상징하는 의미 때문에 연꽃은 모란꽃과 함께 신부의 활옷에도 화려하게 수놓아졌다. 특히 불교 경전 중의 하나인 '관무량수경'에서는 "죽은 자의 모든 영혼은 연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서 바위를 얇은 비단으로 모두 닳게 할 때까지 환생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환생할 때까지 억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미타불을 모시고 간절한 기도와 수행을 하였을 것이다.
이집트의 '사자의 서'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은 연꽃의 향기를 맡고 재생과 부활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연꽃은 세계 문화사에서 재생과 부활, 환생의 코드로 읽혀진다.
후두둑 지나가는 소낙비에 연향(蓮香)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다가 다시 바람 한 줄기가 묻어오며 맑은 하늘이 되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마치 몽유도원도의 도화원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다. 지나는 비에 물방울 몇 개를 받아 든 넓은 연잎이 보석을 품고 있는 푸른 양탄자와도 같다.
한 쌍의 젊은 연인들이 손에 닿을 듯 말듯 한 연밥을 따려고 애쓴다. 상주 공갈못의 '연밥 따는 노래'에는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일랑 내 따줄게. 우리 부모 모셔다오'라는 구절이 나온다. 저 연밥을 따주고 긴 인연을 맺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연인들은 잠시 뒤에 작은 산책로를 따라 연지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합류한 산책로의 데크에서 만난 연인들의 얼굴은 활짝 핀 연꽃처럼 환하다. 달콤한 사랑의 언약이라도 한 것일까. 영원한 사랑을 통해 영혼의 부활을 꿈꾸는 연인이라면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연꽃을 만나러 가야겠다.
천년의 향기를 간직한 연꽃박물관 하나쯤 품은 도시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는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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