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섭의 자명고 (自鳴鼓)] 비정상적인 남북관계 청산, 한반도 당사자 문제①

입력 2022-07-22 12:26:00 수정 2022-07-22 17:57:13

오는 7월 27일은 정전협정을 체결한 지 69주년이 되는 날이다. 1953년 이날 체결된 정전협정은, 북한의 끊임없는 '정전협정 무력화' 책동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과 더불어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을 막는 핵심 장치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발 핵 위기는 정전협정 체제(정전 체제)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현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해야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경도되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명 생략)을 졸라댔다. 김정은 위원장(이하 직명 생략)은 핵 포기 의사가 있으니 만나야 한다며 미·북 정상회담을 종용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트럼프가 2018년 싱가포르에서 김정은을 만난 것은 '솔깃해서'였고, 트럼프가 그다음 해 2월 하노이로 가서 판을 깬 것은 '속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해 6월 판문점에는 김정은을 '달래러' 간 것뿐이다. 화려하게 시작한 비핵화 행보는 이렇게 이벤트로 시작해서 이벤트로 막을 내렸다. 비록 성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교훈은 있다. 그것은 비핵화에 한동안 가려져 있던 당사자 문제이다.

돌이켜 보면 1954년 제네바 평화회의 이후 1992년 남북 기본합의, 4자 회담, 남북 간 정상회담 등 평화 체제를 겨냥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과연 이러한 시도가 이 땅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왜인가? 바로 정전협정의 당사자 문제, 더 정확하게는 당사자 문제로 포장된 북한의 대남 전략 때문이다.

즉 정전협정의 진정한 당사자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와 장차 평화협정을 논의함에 있어 누가 당사자여야 하는가를 둘러싼 예민한 대립이다.

다시 2019년 6월 트럼프와 김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판문점 회동을 복기해 보자. 당시 회동을 청와대는 '역사적 순간'이라며 의미를 부여했으나, 필자의 눈에는 당면한 북한 비핵화는 고사하고 남북 관계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결론을 갖게 하였다. 존 볼턴 전 미 안보보좌관 등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김정은은 문 대통령이 회담장에 나오는 것을 매우 성가시게 생각하고 '과도한 관심'이라며 줄곧 배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김정은은 트럼프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만났으나, 문 대통령은 이들의 양자 회담이 끝날 때까지 바로 옆방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과연 이처럼 국가 의전의 기초적인 상식에도 맞지 않는 만남을 굳이 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란 무엇인가. 비정상적인 남북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한 자료에 따르면, 김정은은 2018년 9월 19일, 문 대통령과 평양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며 백두산에서 양손을 잡고 평양 선언을 한 지 불과 3일 후인 9월 21일, 잉크도 마르기 전에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에서 문 대통령을 '불필요한 간섭꾼' 정도로 폄훼하고 문 대통령을 뺀 미·북 양자 간에 비핵화를 논의하자고 했다고 한다. 새삼스럽다기보다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문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 등으로 맹비난하고,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를 마라'면서 거칠게 비난을 퍼부은 것은, 한국은 핵문제나 한반도 평화문제에 관한 한 당사자가 아니니 끼려고 하지 말라고 무안을 주며 그들의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인데, 문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손 들어 준 꼴이 된 것이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미국과의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비핵화 또는 핵 동결, 핵 반출 등에 대한 강력하고도 가느다란 기대가 있기 때문에 종종 한국의 입장이 도외시될 소지가 있다. 예컨대 클린턴 정부가 북한과 직접 합의(94년 제네바 합의)한 것은 적어도 핵 폐기보다 핵 동결에 대한 기대치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는 경수로 사업의 70% 이상을 감당했지만 북한의 주장에 미국도, 한국도 모두 밀려났다.

이후 9·19 합의 등 다자간 합의 역시 모두 무위에 그쳤다. 그렇다고 남북 간 직접 합의는 무게감이 있었던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전혀 없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을 해 놓고도 뒤로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했지 않은가. 정치인들은 남북 관계 개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경향이 있다. 이 마력에서 빠져나올 줄 알아야 한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모 정권은 남북 관계에 조급성을 느낀 나머지 미국과 북한이 직접 만나는 것에 결코 개의치 않겠다고 공식화했다. 안보 공백과도 버금가는 황당한 생각이다. 미국과의 공조는커녕 북한에 끌려다니는 빌미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은 이를 답습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북한보다 한국의 입장이 더 어렵다고도 한다.

진정성, 국격은 아랑곳 없이 희망적 사고에 편향된 극히 잘못된 결과다. 그러면 북한이 내세우는 근거는 무엇인가? 한국군은 작전권이 없고, 정전협정 서명자가 아니며, 정전협정 체결 자체를 반대했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윤광섭 前 국가안보회의 위기판단관,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