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 문화평론가
난 딸에게 '꼭 필요한 잔소리' 외에는 말을 최대한 아끼는 아빠라고 자부해 왔다. '꼭 필요한 잔소리'는 예컨대 이런 것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절대 미루지 마라!" 말이야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건대 과연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난 며칠 전 어떤 곳을 방문했는데, 그곳은 사실 원칙대로라면 내가 2년 8개월 전에 방문했어야 하는 곳이었다.
내가 그곳의 방문을 미뤄온 이유는 단순했다. 첫째는 왠지 아플 것 같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꼭 필요한 잔소리'를 듣기 싫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차일피일 미뤄온 이번 방문에서도 내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여기 편하게 누우세요." 내가 긴장한 몸을 뻣뻣하게 눕히자 그 숙련된 시니어 여성은 마치 고문을 시작하려는 듯 내 눈 위에 헝겊 같은 것을 덮으며 말했다. "입을 크게 아, 벌리고 지금부터 절대 입으로 숨 쉬지 말고 코로 숨 쉬세요. 알겠지요?", "예으~" 내가 원시인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 간호사는 내 입 안에다 작은 연장들을 들이민 뒤 이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열심히 깎아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도대체 몇 년 만에 오신 겁니까?", "이 단단하게 눌어붙은 치석 좀 보세요! 1년마다 꼬박꼬박 오셔야 된다니까.", "쯧쯧쯧, 이미 잇몸에 염증이 많이 올라와 있네. 이대로 계속 가면 결국 임플란트밖에는 답이 없어." 나는 그 모든 잔소리들을 별다른 저항 없이 100% 수용해야만 했다.
입을 한껏 벌린 채 내 양치의 성적표를 고스란히 오픈한 상황에서는 물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반박은 불가능한 법. "남자들이 특히 더 문제야. 우리 남편도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해도 절대로 치간칫솔이나 치실을 안 써. 그러면 결국 이빨 안쪽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거든." 자신의 엄혹함만이 죄인을 계도할 수 있다고 확신한 천사의 갈굼은 점점 고양되어 갔다. "지금 이 이빨과 이 이빨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사진 찍어도 정확한 건 모른다니까! 결국 뽑혀야 알지, 뽑혀야!"
결국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2년 8개월만의 스케일링은 끝이 났고, 간호사는 오른쪽 아래 사랑니를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내 인생에 큰 화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경고를 끝으로 나를 석방했다. 나는 넝마가 된 몸과 마음을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왔고, '꼭 필요한 잔소리'의 범주는 그 화자(話者)와 청자(聽者) 사이에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의견의 불일치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실감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우리 딸에게 가하는 '잔소리'의 양과 질을 대폭 완화하기로 결심했다. 내 딸은 항상 말했다. "아빠 말, 다 맞는 거 알아. 그래도 듣는 나는 괴롭다고!" 오케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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