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일처다부제 금지'로 시작되는 법의 역사

입력 2022-07-11 19:54:50 수정 2022-07-11 19:57:31

남 괴롭히면 벌줬지만, 男 부정행위엔 관대했다

우르카기나 개혁 법안 점토판. 인류사 최초의 성문법으로 추정되는 법안이다. 강자의 횡포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조항들 가운데 일처다부제 금지 조항도 포함돼 있다. B.C2350년 경.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오늘(12일)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처음 만들어진 날이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200명으로 구성된 제헌 의회가 1948년 7월 12일 헌법을 제정했다. 그 5일 뒤, 17일에 반포해 7월 17일을 제헌절로 삼았다. 16-17만여 년 전 아프리카 동부에 등장한 현생 인류 크로마뇽인은 언제부터 법을 만들었을까? 인류가 가다듬어 온 법치 역사를 들여다본다.

◆B.C 2350년 우르카기나 왕 개혁 법안-약자 보호

중세 1천 년 그리스로마 문명의 숨결을 간직한 이스탄불로 가보자.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24년 노바 로마(NOVA ROMA, 새로운 로마)로 명명했다가 330년 자신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olis)로 문패를 바꿔 단 역사 고도다. 보스포러스 해협과 마르마라해가 3면을 감싸는 사라이부르누(Sarayburnu), 일명 궁전 곶(Palace Cape)에 역사 유적이 밀집해 있다. 궁전 곶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만들었던 로마 궁전터, 1453년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을 무너트린 오스만 투르크(돌궐족)의 토카프 궁전이 탐방객을 맞는다. 하렘의 전설을 피워내는 토카프 궁전에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이 자리한다. 트로이 유물, 철기문명의 주역 히타이트 유물,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 희귀유물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점토판이 B.C2350년 무렵 수메르 라가시 왕국의 우르카기나 왕 개혁법(Reform text of Urkagina)이다. 단군 할아버지보다 더 오래됐다.

함무라비 법전. 앞선 메소포타미아의 법전들이 전체 법전 내용 가운데 일부만 전해지는 것과 달리 함무라비 법전은 온전하게 법전 전체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법전이다.
우르카기나 개혁 법안 점토판. 인류사 최초의 성문법으로 추정되는 법안이다. 강자의 횡포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조항들 가운데 일처다부제 금지 조항도 포함돼 있다. B.C2350년 경.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유구한 법의 역사도 믿기지 않을 정도지만, 더 놀라운 것은 법전의 내용이다. 일처다부제(polyandry) 금지. 우크라이나 출신의 메소포타미아 연구 권위자로 인정받는 크라메르(S. M. Cramer)는 1964년 우르카기나 개혁법을 해석하며 놀라운 주장을 펼쳤다. 여인 1명이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사는 일처다부제 금지 발표다. 물론 이 개혁법안의 핵심은 개혁군주로 평가받는 우르카기나왕이 특권 신관계급과 대토지 소유자들의 전횡으로부터 일반 국민을 보호하는 반부패관련 규정들이다.

함무라비 법전이 출토된 이란 수사. 유프라테스 강가 바빌론에 설치됐던 함무라비 법전을 B.C11세기 이란 고원의 엘람 왕국 왕 나훈테가 바빌론을 침략해 전리품으로 약탈해 수도인 수사로 가져왔다. 함무라비 법전이 이란에서 출토된 이유다.
함무라비 법전. 앞선 메소포타미아의 법전들이 전체 법전 내용 가운데 일부만 전해지는 것과 달리 함무라비 법전은 온전하게 법전 전체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법전이다. '눈에는 눈'이라는 동해복수법으로 이름 높지만, 사회적 약자 보호 취지가 서문에 잘 담겨 있다. B.C1772년 경. 루브르 박물관

특히, 과부와 고아에게 세금을 면제하는 등의 개혁책은 일종의 취약 계층 보호 법안이라 평가할 만하다. 친서민 성향 조항에도, 일처다부제 금지를 비롯해 여인들이 남자보다 차별받는 내용이 있어 『여인의 방(The Women's Room)』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페미니스트 작가 프렌치(M. French)는 2008년에 나온 『저녁에서 새벽까지:여인의 역사(From Eve to Dawn: A History of Women)에서 여성인권의 퇴보를 기록한 첫 문서라고 평가했다. 여성 인권 퇴보는 이후 제작된 법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히타이트 법전. 인류 역사 최초로 철기문화를 이룩했던 히타이트 역이 메소포타미아의 법치문화를 받아들여 쐐기문자로 된 히타이트 법전을 제정했다. B.C 14세기.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함무라비 법전이 출토된 이란 수사. 유프라테스 강가 바빌론에 설치됐던 함무라비 법전을 B.C11세기 이란 고원의 엘람 왕국 왕 나훈테가 바빌론을 침략해 전리품으로 약탈해 수도인 수사로 가져왔다. 함무라비 법전이 이란에서 출토된 이유다.

◆B.C 20세기 전후 메소포타미아 국가들-법치 전통 계승

메소포타미아에서 법의 역사는 우르카니나 왕 개혁법에 이어 B.C 2100-B.C2050년 경 수메르의 우르남무왕 법전(Code of Ur-Nammu)으로 계승된다. 이라크의 고대 수메르 도시 니푸르에서 출토돼 현재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된 이 쐐기 문자 법전 역시 크라메르가 1952년 해독했다. 이 가운데 남을 죽이거나 도둑질을 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규정 외에 다음과 같은 조항이 나온다. "만약 유부녀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면 그 여인을 죽이고, 남자는 처벌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누가 봐도 불공평한 조항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남자가 과부와 결혼 계약 없이 잠자리를 가질 때 아무런 대가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은 남성 권력 시대로 확실히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로마 포럼. 로마가 평민들의 권리를 확대하면서 B.C474년 호민관을 선출하기 시작했고, 이후 B.C450년 경 최초의 법전인 12표법을 만들어 동판에 새긴 뒤, 광장인 포럼에 세웠다.
히타이트 법전. 인류 역사 최초로 철기문화를 이룩했던 히타이트 역이 메소포타미아의 법치문화를 받아들여 쐐기문자로 된 히타이트 법전을 제정했다. B.C 14세기.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메소포타미아의 법전은 B.C 1930년경 에쉬누나 법전(Laws of Eshnunna)으로 이어진다. 앞서 두 법전이 법을 만든 왕의 이름을 딴 것이라면 에쉬누나 법전은 국가 이름에서 나왔다. 에쉬누나는 티그리스 강변에 있던 고대 도시국가 이름이다. 에쉬누나 법전은 서구 고고학자들의 손에서 벗어나 이라크인 스스로 발굴한 법전이란 점에서 돋보인다. 1921년 영국의 보호국으로 독립한 이라크왕국의 발굴팀이 수도 바그다드의 델 하부 아말 지구에서 발굴했다. 에쉬누나 법전의 또 다른 의미는 앞선 두 법전이 메소포타미아 문명 초기 주인공인 수메르인들의 법전이라면 에쉬누나 법전은 수메르인들을 몰아내고 등장한 아카드인의 법전이란 점이다. 수메르 쐐기 문자를 빌렸지만, 언어는 아카드어다. 에쉬누나 법전에 이어 B.C1870 경 리피트-이슈타르 법전(Codex of Lipit-Ishtar)이 나왔다. 메소포타미아의 이신(Isin) 1왕조 리피트 이슈타르(Lipit-Ishtar, B.C 1870 –B.C 1860) 왕 통치시기 제정됐다. 리피트-이슈타르 법전에 이어 마침내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 누구가 한번 쯤 들어봤을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이 B.C 1772년경 등장한다.

◆B.C 1772년경 함무라비 법전- 애민정신

20세기 문을 열며 1901년 프랑스 이집트 학자 제뀌에(G. Jequier)가 이란의 수사에서 출토한 이 법전은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높이 225cm의 검은색 섬록암으로 만들어졌다. 기존에 소개한 4개의 법전이 점토판인데 반해 함무라비 법전은 대형 비석이다. 비석 상단부 왼쪽에 둥근 모자를 쓴 함무라비 왕. 오른쪽에는 신을 상징하는 고깔모자를 쓴 바빌로니아의 태양신 샤마쉬(Shamash, 수메르의 우투)가 옥좌에 앉았다. 서문과 282개 법 조항이 셈족 아카드어 쐐기 문자로 적혔다. 마모된 부분을 빼고 246개 조항이 해독됐다. 함무라비 법전은 점토판으로도 발굴됐다. 이는 무슨 의미냐 하면 수도 바빌론에 섬록암의 기념비로 법전을 만들어 세우고, 제국 각 지내 총독들이 통치에 활용할 법전은 점토판으로 만들어 각지로 내려 보낸 것이다.

시카고 대학 하퍼(R. F. HARPER) 박사가 발굴 3년 뒤, 1904년 펴낸 『바빌론왕 함무라비 법전(1904년)』을 보면 "만약 누군가 남의 눈을 상하게 하면 그의 눈을 상하게 한다"는 조항이 나온다, 하무라비 법전의 상징처럼 알려진 196조다. 129조도 관심을 끈다. "남편 있는 여인이 다른 남자와 누워 있으면 둘 다 강물에 집어던진다.". 판독된 246개 조항 가운데, 32개 조항 13%가 사형조항이다. 잔혹한 형법처럼 보이지만, 50%가 계약과 건축에 관한 자본주의 법전이다. 무엇보다 서문에 "온 나라에 정의를 퍼트리고, 사악한 자들을 없애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과부와 고아가 굶주리지 않도록, 평민이 악덕 관리에게 시달리지 않도록 법을 만들었다". 진정한 법치는 애민정신임을 되새겨 준다.

로마 포럼. 로마가 평민들의 권리를 확대하면서 B.C474년 호민관을 선출하기 시작했고, 이후 B.C450년 경 최초의 법전인 12표법을 만들어 동판에 새긴 뒤, 광장인 포럼에 세웠다.

◆히타이트 이은 그리스 로마 법전- 평민권리 확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문자를 만들고 법을 제정해 사회통치 시스템을 정비했던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은 이웃한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로 전파된다. 첫 철기문화의 주인공인 히타이트인들은 B.C 17세기 아나톨리아 그러니까 오늘날 터키 중부에 국가를 건설한다. B.C 1650년경 오늘날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동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진 유적지 하투사를 수도로 삼고, B.C14세기 국력을 절정으로 발전시켰다. 지금도 거대한 성벽과 성문 유적을 간직한 하투사의 고대 히타이트 왕실 문서고에서 3만여 점의 쐐기 문자 점토판이 출토됐다. 강력한 철제 전차를 만들어 전쟁사에 한 획을 그었던 히타이트인들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받아들인 문자와 법치 시스템도 발전시켰고, 여러 점의 히타이트 법전 점토판을 남겼다. 히타이트 최초의 법전은 네실림 법전(Code of the Nesilim)으로 B.C1600년 전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해독된 200개 조항 가운데 성범죄 관련 조항이 14개나 돼 중요하게 다뤄졌음을 알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최초 법전에서부터 이어지는 성 관련 문제 중시 전통이다. 네실림 법전 이외에도 하투사에서 출토된 점토판 히타이트 법전을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만나볼 수 있다.

서양문명의 원천 그리스에서는 B.C621년 첫 성문법이 등장한다. 드라콘 법전이다. 귀족출신 드라콘은 강력한 법치를 통해 아테네 사회를 안정시키고 평민의 권리 확대를 도모했다. 로마 역시 법 제정은 평민의 권리신장과 연결된다. B.C509년 공화정으로 전환한 로마에서 평민들이 실질적으로 권리를 확보해나가기 시작한 것은 B.C474년 호민관을 평민 손으로 선출하면서다. 이후 법에 따라 일반시민의 권리가 보장됨을 알리고자 B.C 450년경 법전을 동판에 새겨 광장인 포럼에 설치했다. 로마 사회 최초 성문법인 12표 법이다. 제헌절을 앞두고 법은 시민의 권리 보호와 확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역사적으로 새삼 확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