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시진핑의 홍콩 방문이 노리는 것

입력 2022-07-04 10:03:03 수정 2022-07-04 18:21:30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안타까웠다. 우리가 알던 홍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30일과 이달 1일 이틀간 홍콩을 방문,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행사'를 주관하고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반환받은 기쁜 날이었지만 거리는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쳐진 채 경계가 삼엄했고, 도시는 무거운 정적에 잠겨 있는 듯 우울해 보였다.

시 주석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 본토를 벗어난 것은 2020년 1월 미얀마 국빈 방문 이후 2년 6개월여 만이다. 그의 홍콩 방문도 홍콩 반환 20주년 때인 2017년 이후 5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이후 두문불출하던 그의 홍콩 방문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는 지난달 30일 광둥성 선전(深圳)에서 고속철도를 타고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홍콩에 도착해서 홍콩 행정장관의 영접을 받았고 곧바로 홍콩 주재 인민해방군 부대를 시찰하는 등 '중국화'된 홍콩의 질서유지에 잔뜩 신경을 쓰는 행보를 보였다.

홍콩은 2014년 우산혁명에 이은 2019년 대대적인 반중 시위 사태 후 홍콩보안법이 통과되면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완전 차단되는 등 중국 본토와 다를 바 없는 공안통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애국자에게만 피선거권을 준다'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 이후 치러진 첫 행정장관 선거에 '중국에 충성하는 홍콩을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출마해서 당선된 존 리 신임 행정장관은 이날 취임식에서 시 주석에게 90도 '폴더 인사'를 하면서 충성 맹세를 했다. 5년 전 캐리람 전 행정장관이 시 주석에게 당당하게 악수를 건네던 것과 대조적인, '홍콩 누아르 영화와도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시 주석의 기념식 연설도 '중국화된' 홍콩의 암울한 현재와 미래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홍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에서 그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세상이 공인하는 성공을 거뒀다"고 자평하면서 '일국양제'를 20차례나 언급했다.

"국가의 주권, 안전, 발전 이익을 지키는 것이 '일국양제' 방침의 최고 원칙이라는 전제 아래 홍콩과 마카오는 자본주의 제도를 장기간 변하지 않도록 지키고 고도의 자치권을 누릴 수 있다. 사회주의 제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근본 제도이고, (홍콩) 특별행정구의 모든 주민은 국가 근본 제도를 자각적으로 존중하고 수호해야 한다."

시 주석이 언급한 '일국양제'는 홍콩 반환 후 중국이 약속한 홍콩이 반환 전 누리던 민주주의와 자유 체제가 아니라 완전한 중국화와 형식적인 자치권을 의미하는 모양이다. 따라서 홍콩 역시 중국 영토로 복귀한 만큼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자치행정권을 갖고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이다.

시 주석의 홍콩 행보는 올가을 예정된 제20차 공산당대회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됐다. 이번 당대회는 시 주석의 3연임을 공식화하는 중요한 정치 행사라는 점에서 완전히 평정된 홍콩 모습을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홍콩의 복속 역시 시 주석 업적의 하나로 과시하는 측면이 있다. 홍콩 방문 직전인 지난달 28일 시 주석이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원지인 우한(武漢)을 방문, 제로 코로나 방역의 성과를 자평하고 나선 것도 그런 맥락이다.

또한 홍콩 방문과 일국양제 강조는 시 주석의 3연임을 강행하게 된 명분이기도 한 '대만 통일'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히고 있다. 홍콩에 대한 정치적 성과를 바탕으로 대만에 대해서도 홍콩식 일국양제로 통일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한 셈이다. 시진핑의 홍콩 방문에 대해 대만 정부가 화들짝 놀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미 시 주석이나 중국공산당은 시 주석 집권 기간 내에 최대한 빨리 대만 통일을 완성하겠다며 대만에 대한 무력 침공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공언한 바 있다.

대만 정부의 중국 담당 기구인 대륙위원회는 이와 관련, "홍콩의 민주주의 인권 자유 법치는 25년 전에 비해 심각하게 후퇴했다. 대만은 민주 선거를 통해 전 세계와 중국공산당에 일국양제를 거부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표명했음을 거듭 밝힌다"며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중국과 대만 양안(兩岸) 긴장도 덩달아 고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