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사양지심(辭讓之心)의 회복

입력 2022-07-03 12:46:41 수정 2022-07-03 16:05:09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2020년 '옥스퍼드대사전'은 70년 만에 완전 개정판을 내놨다. 약 6년 동안 60억 원을 투입한 대역사를 통해 한국어에서 파생된 영어 단어 26개도 새로 등재됐다. '한류'를 비롯해 'K-드라마' '한복' '만화' 등 한국 문화와 관련된 단어들에서 '치맥'이나 '파이팅' '콩글리시' 등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들까지 포함됐다. 최근에는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게임' 등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창의적 작품이 쏟아지고 있고, BTS를 비롯한 한국 가수들이 세계 음원 차트의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심지어 한국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배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외국어가 됐다. 이처럼 '한국적'인 것들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국의 정치다.

한국 정치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실현한 나라로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던 것이 불과 30년 전이다. 그러나 민주화를 이룬 이래 정치인들은 너나없이 권력을 향한 과도한 욕심을 부렸고, 선거 승리를 위해 포퓰리즘적 정책을 남발해 왔다. 유권자들도 달콤한 약속에 속아 휘둘리다가 이제는 끝없이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K-정치'는 이제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기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권 말기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공공기관이나 국책연구소, 정부기관의 장 자리에 자기 사람을 임명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홍장표 KDI 원장,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법대로 하자며 임기를 고수하는 파렴치함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문재인'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임기직은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와 기관 운영의 효율성 및 효과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구분되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는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그 임기가 보장되는 것이 당연하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선관위원 등이 그렇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대다수 자리는 운영의 편의상 임기를 정한 것이지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결자해지라 했으니 지금이라도 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임명한 사람들에게 물러날 것을 촉구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젊은 나이에 당 대표로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면서 일약 차세대 주자로 발돋움했다. 이 대표의 정치적 능력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인간' 이준석은 크게 부족하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경우, 항상 싸움닭처럼 몰아붙여 반드시 이겨내고 만다. 처음 한두 번은 젊은 사람의 패기와 썩은 정치를 도려내고 새 정치를 구현하기 위함이라 여겨 박수를 치기도 했지만 반복되는 그의 행태는 짜증과 반대를 유발했다. 지난 대선 때도 당의 대통령 후보를 쥐고 흔든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후보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기도 했었다. 혹자는 5% 이상으로 이길 수 있었던 선거에서 이 대표 때문에 오히려 0.73%밖에 이기지 못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옛말에 대장부가 해서는 안 될 세 가지 중 첫 번째가 바로 소년등과(少年登科)라 했는데, 이 대표가 바로 그 경우다.

두 사례 모두 기본적으로 사람으로서의 기본적 예의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맹자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지단야(禮之端也)'라 하여, 양보하는 마음이 예의 시작이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도, 이 대표도 모두 조금이라도 양보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이토록 국민을 실망시키고 갈등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에서는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 추미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친민주당 검사들을 동원해 그토록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내려 한 것이 곧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처럼회를 동원해 불과 23일 만에 '검수완박' 입법을 완성한 것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의한 권한쟁의심판 청구로 이어졌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면 이긴 것 같지만 멀리 보면 결국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국민을 생각한다면 서로 예의를 갖추고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라. 경제가 풍전등화처럼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욕심만 부리면서 부끄러운 K-정치의 모습을 보이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