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경 소설가
우리 집은 광화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광화문에도 사람이 사느냐는 반문이 흔히 돌아오곤 한다. 광화문에도 사람이 산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출장을 가면 헬리콥터가 우리 집 위로 날아갔다. 헬리콥터 날아가는 소리가 상당히 커서, 대통령의 지방 일정을 모르고 넘어가기 어려웠다. 이제 청와대는 시민공원이 되었으므로 그 일도 모두 추억이 되었다.
광화문이라는 특별한 동네에서 한평생 살다 보니 이래저래 정치가 일상생활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내가 30대였을 때까지는 대통령이 한 번 출타할 때마다 20~30분은 족히 걸리는 교통통제를 했다. 대통령의 일정만 중요하고 시민들의 스케줄이야 아랑곳없던 시절이었다. 하염없이 서 있는 버스 속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울화통을 터뜨리는 게 일상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VIP의 편의를 위한 광화문 일대의 차량통제는 차츰 사라졌다. 지난 10여 년간은 대통령 출타 때문에 교통통제로 불편을 겪은 일이 없다. 민주주의적 사고와 교통통제 기술력이 함께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오묘하게 교통신호를 조작하고 어디선가 나타난 교통경찰이 잠깐씩 일반 차량 통행을 지도하는 사이에 의전 차량은 놀라운 속도로 복잡한 도심을 통과한다. 의전 차량이 지나간 뒤 곧바로 일반 차량이 잠시 빨라진 도심 통행속도를 즐기며 그 뒤를 따른다. 이 모든 일은 1~2분 안 눈 깜짝할 사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진다.
기억하건대 2008년 광우병 사태 이전까지 광화문 일대는 도심 시위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도심 시위는 서울역, 을지로, 명동, 대학로 하는 식으로 구도심 일대 여기저기에서 일어났다. 광장이 생긴 이후 광화문은 '시위의 메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다. 이후 10여 년간 광화문 거주자는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듯 오늘의 시위 정보를 확인하며 지내게 되었다. 시위 시간은 몇 시인지, 시위대의 규모는 얼마인지, 행진 구간은 어디인지, 버스 우회 구간과 지하철 무정차 통과 구간은 어디인지,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하지 않으면 곧바로 가족들의 등하교와 출퇴근에 막대한 지장이 생겼다.
코로나19로 집회가 금지돼 광화문은 시위 없이 고요한 2년의 휴식기를 가졌다. 때맞춰 광화문 광장은 2020년 11월부터 광장과 세종문화회관 쪽 보도를 연결하는 새 단장 공사에 들어갔다.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높직한 버스에서 현장을 넘어다보면 광장의 모습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새로 단장되는 그곳에는 길쭉한 원형극장같이 아래로 우묵하게 내려가는 단차 구조가 있어서 무언가 공연을 할 수도 있을 것같이 생겼고, 무엇보다도 중간중간에 나무를 많이 심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좋은 생각이다. 공간에 나무는 중요하다. 이전에도 광화문 광장에서는 아름다운 꽃을 심고 전시회나 장터 같은 행사들을 열곤 했지만 언제나 그곳은 뙤약볕이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콘크리트 바닥 광장의 한계는 명확했다. 그곳에서는 오랜 시간 즐거움을 유지할 수 없었다.
장마가 오기 직전 마지막으로 화창한 날을 틈타 부모님을 모시고 청와대 관람을 다녀왔다. 청와대는 요새 어르신들의 에버랜드라고 할 만하다. 아침부터 경복궁역 일대에는 청와대 관람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길고 길다. 보행이 불편하지 않다면 굳이 셔틀버스를 기다리지 말고 운치 있는 경복궁 돌담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가시라고 권하고 싶다. 65세 이상이라면 경복궁 입장도 무료이니 경복궁을 통과해 아름다운 경회루와 근정전을 둘러보며 신무문으로 올라가셔도 좋다. 한 바퀴 둘러보는 데 대략 8천 보에서 1만 보를 걷게 된다.
젊은 시절을 이 동네에서 보내신 나의 부모님은 특별히 감개무량하게 청와대를 관람하셨다. 청와대 서쪽의 아름다운 인왕산 자락에는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옛 마을이 선명하게 보인다. 인파와 더위로 들끓는 청와대에서 나는 나의 부모님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우뚝한 청년이던 부모님은 흰 머리의 노인이 되셨고, 언제나 고요하던 청와대는 시민공원이 되어 관람객으로 가득 찼고, 광화문은 그 모습을 여러 차례 바꾸고 있다. 세월의 흐름을 광화문과 청와대라는 공간으로 절감한 날이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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