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멜론에서 메로나 아이스크림 맛을 느낀다. 놀러 가서 본 바다가 화면으로 보던 고화질의 바다보다 왠지 못한 것 같다. 까만 밤하늘에서 '반~짝' 하는 것을 볼 때 별보다 비행기가 먼저 떠오른다. 햇빛은 차단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외출할 때 철저히 대비한다. 산은 올라가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야외에서 나무나 풀, 꽃을 보면 기분 좋지만 냄새를 맡거나 직접 만져 보지는 않는다….
이렇게 현대인은 자연과 거리두기를 잘하고 있다. 그만큼 자연과는 멀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연은 동식물이나 자연환경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인공이나 가상의 세계가 아닌 진짜 세상을 말한다. 소위 미디어(media)를 통한 경험은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면서 확대되고 일상화되었다. 미디어를 통한 간접경험의 세계는 풍부해졌지만 많은 이는 여전히 미디어를 거치지 않는 '찐' 경험을 소망한다. 하지만 '태어나 보니 스마트폰이, 인터넷이 있더라'는 지금의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미디어를 통한 경험이 그야말로 '자연'스럽다. 대신 자연을 직접 접촉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고 있다.
리처드 루브(Richard Louv)는 저서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2005)에서 현대사회에서 어린이와 자연 사이에 갈수록 커져 가는 간극을 표현하기 위해 '자연결핍장애'(Nature Deficit Disorder)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후 루브는 자연결핍장애가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적용 가능하다고 보고 첨단 과학과 기술의 시대에도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변화시킬 수 있는 자연의 힘을 강조하며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공동체 운동을 이어 가고 있다.
자연결핍장애는 의학 용어가 아니다. 따라서 구체적인 진단 기준은 없지만 인간이 자연에서 멀어지면서 발생하는 감각의 둔화, 신체 활동 부족, 집중력 저하, 정신적 피로 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에게 자연 경험이 얼마나 결핍되어 있는지 한 번 살펴보자. 흔히 건강을 위해 뭘 좀 해야겠다고 결심할 때 비타민을 챙겨 먹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 자신에게 자연 경험이 결핍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비타민N(Nature의 N에서 따온 것으로 루브가 제안한 것)을 챙기는 것은 어떨까. 그 구체적인 방법은 루브의 '지금 우리는 자연으로 간다'(2011)를 참고하면 좋겠다.
여기서 내가 추천하는 것은 현대인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상의 세계, 미디어를 통한 간접경험에서 조금은 벗어나 오감(五感)을 온전하게 작동시켜 실재를 느껴 보라는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에서 시청각, 특히 시각 자극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적게 경험하게 되는 후각이나 촉각 같은 자연스러운 감각 능력을 되살려 보자. 무한 리필(?)이 가능한 자연환경 속에서 그러한 경험을 해 본다면 더욱 좋겠다. 매끈한 스마트폰 화면만 쓰다듬지 말고 실제 세계의 다양한 자연과 사물, 현상들과 '찐' 연결을 시도해 보자.
그 시작을 이렇게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 걸으면서 햇볕 쬐기,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공기와 흙 냄새 맡아 보기, 뺨으로 바람 맞아 보기, 나무껍질의 질감을 손바닥으로 느껴 보기, 손가락으로 나뭇잎이나 꽃잎 비벼 보기, 싱싱한 과일이나 야채를 사각사각 천천히 씹어 먹기 등. '월든'의 저자인 자연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가 말한 '야생의 활력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현대인에게는 적어도 자연의 활력소가 필요해 보인다. 자연결핍엔 비타민엔(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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