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24> 스물일곱에 만난 사람

입력 2022-06-23 11:02:46 수정 2022-06-26 16:20:36

강우란 고산도서관 사서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지음·김춘미 옮김/ 민음사 펴냄)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지음·김춘미 옮김/ 민음사 펴냄)

"인생 책이 뭔가요" 사서라는 직업을 밝히면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이다. 나는 책이라면 다 좋았고, 단 한 권의 책으로 나의 인생을 말하기엔 너무 어리고 어려웠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모르겠어요" 혹은 "없어요"라고 답하며 웃어넘기기만 했다.

그랬던 내가 인생 책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생겼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다.

도서관에서 인간실격은 표지가 너덜너덜할 정도로 대출이 잘 되는 책이다. 그래서 오히려 읽으려 하지 않았던 책이기도 하다. 너무 뻔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한때 나는 무기력의 끝을 달렸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웃음도 나오지 않고, 밥 먹는 것도 귀찮았다. '물속을 걷고 있다'는 표현이 나의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낸 말이었다. 사람이 싫어서 이용자를 만나는 것조차 힘겨운 시기였다.

읽지 않으려 했던 그 책이 그 순간 반납되어 나의 눈에 띈 것은 운명 같았다. 우연찮게 나의 27살에 만난 27살의 주인공 요조는 내가 잠긴 물속으로 조약돌을 던져 준 인물이었다.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고, 메모장에 옮기면서 요조의 우울과 어둠을 함께 공유하였다.

"지금 저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세상에서 딱 하나 진리 같다고 느낀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저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부쩍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이 넘은 나이로 봅니다."

때로는 뻔한 것들이 위로를 준다. 언젠간 또다시 번아웃을 겪어 무기력증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예전과 달리 내겐 마법의 문장이 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힘들 때 가장 위로가 되었던 친구가 뽑은 최악의 책이 인간실격이다. 친구가 만난 요조는 자기 연민과 자아 도취에 빠진 남자였다. 나는 요조의 감정이 이해돼 공감하며 읽었지만, 친구는 두 번을 읽어도 인간실격이라는 제목만을 선명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책은 참 신기하다. 모든 사람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바가 다르다. 그러니 타인의 서평이든,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베스트셀러 순위든 상관하지 말고 일단 읽으시길 바란다. 읽고 난 후는 어떻게든 전과 다를 테니까.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책을 통해 행복한 쪽으로 한 발자국 걷길 바란다.

강우란 고산도서관 사서
강우란 고산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