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한국 아동문학 주춧돌이 된 ‘네 동무’ 이야기

입력 2022-06-16 12:46:16 수정 2022-06-16 18:03:30

동요 이 수록된
동요 이 수록된 '동요곡보집'(1929)

'오동나무 비바람에 잎 떠는 이 밤/ 그립던 네 동무가 모였습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날이 밝으면/ 네 동무도 흩어져 떠나갑니다/ 오늘 밤엔 귀뚜라미 우는 소리도/ 마디마디 비에 젖어 눈물 납니다/ 문풍지 비바람에 스치는 이 밤'(동요 〈슬픈 밤〉 전문) 노랫말 속의 '네 동무'는 어떤 이유로 모였다가 헤어지는 걸까. 어떤 사이이기에 이렇듯 이별이 슬프고 애달픈 걸까.

'네 동무'는 바로 서덕출(1906~1940), 윤복진(1907~1991), 신고송(1907~?), 윤석중(1911~2003)이다. 윤복진은 대구, 서덕출과 신고송은 울산, 윤석중은 서울 출신으로 1920년~30년대 소년문예운동의 중심인물들이다. 네 사람은 모두 10대 때부터 아동문학가로 이름을 알렸다.

또 이들은 모두 잡지 《어린이》를 통해 데뷔하거나 주로 이 잡지를 통해 활동했다. 1929년 홍난파가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집 『조선동요백곡집』에 네 사람의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또 이들은 회람잡지 《굴렁쇠》의 동인이기도 했다. 《굴렁쇠》는 각자가 지은 동요와 글동무들에게 알릴 일을 작은 편지에 곁들여서 원고를 묶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서울의 윤석중이 진주의 소용수에게, 소용수가 마산의 이원수에게, 이원수가 언양의 신고송에게, 신고송이 울산의 서덕출에게, 서덕출이 대구의 윤복진에게, 윤복진이 수원의 최순애에게 보내는 등 전국을 돌아서 다시 윤석중에게 오는 것이다.

이 무렵 대구에서는 윤복진이 중심이 되어 서덕출, 신고송과 함께 문예단체 '등대사'를 만들고 동인지 《등대》를 발간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던 '소년 문인'들은 지역을 넘나들며 연대했다.

이 동요가 창작되던 날의 이야기는 윤석중이 1930년 《어린이》에 기고했고, 또 그의 수기 『어린이와 한평생』(범양사, 1985)에도 실려 있다. 윤석중이 1927년 여름방학 때 서덕출(척추 장애)을 만나기 위해 울산으로 갔는데 신고송이 이미 와 있었고 그 소식을 듣고 대구에서 윤복진이 찾아왔다.

모인 기념으로 헤어지기 전날 밤, 노래를 한 편 지은 것이다. 완성된 노래에 작곡가 박태준이 곡을 붙여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 곡은 이들 중 두 사람의 월북으로 인해 금지곡이 되기 전까지 작별의 노래로도 많이 불렸다고 한다. 악보는 1929년 윤복진이 펴낸 『동요곡보집』에 실려 있다.

윤석중은 방정환의 뒤를 이어 잡지 《어린이》 주간을 맡고 〈어린이날 노래〉 등 유명한 동요를 수백 편 남기는 등 93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국내 아동문학계의 거목으로 활동했다. 서덕출은 작고 후 1949년 유가족이 동요집 《봄 편지》를 출판했다. 울산에서는 2010년 『서덕출 전집』을 발간한 것을 비롯해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과 창작동요제도 운영하고 있다.

신고송은 울산 출신이지만 대구와 인연이 깊다. 1925년 대구사범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문예활동을 시작했다. 수많은 동요와 아동극 희곡을 발표했고 일본 유학 후 연극을 공부했고, 귀국 후 대구에서 이상춘 등과 함께 《연극 운동》을 발간하는 등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에 매진했다.

해방 이후 월북하면서 오랜 세월 잊혀 있다가 2008년 울산문인협회가 『신고송 문학전집』을 발간하면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대구에서는 지난 2019년 대구예술발전소에서 '대구아트레전드: 이상춘展'이 열리면서 신고송의 활동이 소개됐다.

그에 비해 대구 출신 윤복진에 대한 조명은 아직 미미한 편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전국적으로 이름났었고,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 폭넓은 장르의 예술인들과 교류했다. 그의 시에는 홍난파가 곡을 붙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같은 대구 출신의 박태준이 작곡을 했다.

박태준과는 작곡집 『중중 때때중』과 『양양 범버궁』을 함께 펴냈다. 화가 이인성과 함께 한 기록이 많고 또 일제강점기 민족백화점 무영당 창립자 이근무와의 인연도 각별했다. 그렇지만 6·25전쟁 중 월북한 이유로, 일부 연구자들의 논문에 등장했을 뿐 오랜 세월 잊힌 인물이었다.

2013년 TBC 김도휘 아나운서가 '시의 날' 특집 라디오 다큐멘터리 〈물새발자욱〉을 제작하면서 '윤복진'이라는 이름이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자료가 알려지고 윤복진의 삶과 예술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대구문학관이 그의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기획전시를 열었다. 최근 그의 스토리가 담긴 무영당백화점 건물을 대구시가 매입하면서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이육사기념사업회에서 '윤복진'을 주제로 한 강연을 열었고, 오는 가을에는 대구문학관이 같은 주제로 세미나를 준비한다고 한다.

1927년 비바람 불던 여름 밤, 내일의 이별을 생각하며 울던 네 동무는 지금 무엇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아동문학의 큰 주춧돌이 되어준 네 동무를, 오늘의 우리도 기억하기를 바란다. SNS로 늘 연결되어 있지만 각자의 우주에 갇혀있는 우리에게 그들의 노랫말은 우리를 따스하게 연결시켜주는 힘이 있다.

임언미
임언미

임언미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장, 대구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