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삼국사기’ 김유신 이야기 그린 이도영의 1922년 역사화 '석굴수서'

입력 2022-06-17 12:30:42 수정 2022-06-21 11:21:02

미술사 연구자

이도영(1884-1933),
이도영(1884-1933), '석굴수서(石崛授書)', 1922년(39세), 비단에 채색, 181.1×85.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지필묵 문화권 회화 중에는 역사적으로 존재했거나 또는 글 속에 나오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는 고사화(故事畵)가 있다. 중국 인물이 대부분으로 조선시대와 20세기에 많이 그려졌다. 김유신 일화를 그린 이도영의 '석굴수서'는 고사화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 같다.

김유신은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편으로 전기가 실린 역사 인물이다. 이 그림 속 사건도 정사(正史)인 이 책에서 가져왔으며, 역사를 소재로 삼은 그림의 성격에 어울리는 격조 있는 화풍으로 그려졌다. '석굴수서'는 우리나라 회화에 없던 장르인 역사화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

예서로 크게 쓴 제목 '석굴수서'로 김유신이 석굴에서 병서(兵書)를 전수받은 사건이 주제임을 알려준다. 진평왕 28년(611년) 외적이 침입하자 17세의 김유신은 나라를 지키려는 뜻을 품고 중악(中嶽)의 한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하늘의 도움을 빌었다. 4일째 되는 날 난승(難勝)이라는 신인(神人)이 나타나 외적을 물리칠 비법이 적힌 책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제목 옆으로 "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 이십팔년(二十八年) 김유신(金庾信) 연십칠(年十七)…"로 김유신 편의 내용을 써넣었다.

석굴을 배경으로 왼쪽에 무릎 꿇고 책을 받아든 김유신이 있고 맞은편에 지팡이 짚은 신인이 서있다. 인물과 배경을 단정한 필치로 꼼꼼하게 묘사했다. 청색과 주황색의 옷 색깔로 김유신과 신인을 대비시켰고, 동굴과 바위는 녹색과 갈색의 짙은 채색으로 역사화의 위엄을 나타냈다.

이도영은 이 대작을 그리기 위해 역사인물의 선정과 그림화 할 사건의 선택에서부터 구도와 화풍, 인물 표현과 복식 고증, 배경의 설정, 제화 등 모든 부분에서 고심을 거듭했을 것이다.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석굴수서'는 자국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위인의 출현이 간절히 요구되던 일제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나왔다. 김유신을 비롯해 연개소문, 을지문덕, 강감찬, 신숭겸, 이순신, 논개 등 국난 극복의 위인들이 을사늑약을 전후해 애국계몽운동이 펼쳐지면서 널리 알려졌다. 신문이나 잡지 등 대중매체의 기사나 연재물, 단행본 소설 등으로 우리의 역사 인물과 그 행적이 유포되었다. 안확, 최남선, 신채호, 정인보 등 지성계의 국학 연구와 맥락을 같이하며 미술계에서 나타난 것이 이도영의 역사화다.

이도영은 1909년 5월 창간한 '대한민보'에 친일파를 풍자하는 시사만화를 그리며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한 미술가다. 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 이야기를 그린 기념비적인 작품 '석굴수서'를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주최한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내놓았다.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