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안의 클래식 친해지기] <21> 드뷔시의 ‘목신(牧神)의 오후에의 전주곡’

입력 2022-06-13 11:05:26 수정 2022-06-13 16:53:50

대구시합창연합회장

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장
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장

프랑스 파리는 에펠탑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1889년 파리세계만국박람회 때 세워질 당시 에펠탑은 지나치게 혁신적인 데다 파리의 경관을 헤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도심의 흉물스러운 철 구조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그곳은 프랑스사람들 뿐 아니라 세계 많은 사람에게 각광받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전에 프랑스혁명으로 전통적인 왕권에 맞서 쟁취한 시민의 자유와 함께 한 세기가 지난 후 에펠탑은 혁신이 낳은 파리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취급된다.

작곡가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당시 독일 위주의 음악에 대항하여 혁신을 이루어 낸 프랑스 음악가다. 그가 말년에 작곡한 세 개의 소나타에 '클로드 드뷔시, 프랑스 음악가'라고 적었다. 그는 독일적인 음악형식인 소나타 형식을 탈피하는 대담한 시도로 자신의 수식어를 그의 소나타 작품에 기입할 정도로 프랑스에 대한 강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열 한살 때 파리국립음악원에 입학한 드뷔시는 22세 때 작곡한 칸타타 '방탕한 아들'로 로마대상을 수상했다. 로마대상은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이지만 드뷔시는 이 상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수상자에게 로마에 유학할 수 있도록 특전이 주어졌으나 집단 수련에 대한 불만과 엄격한 규제들이 젊은 예술가들의 자유분방함을 제한한다고 생각해 2년 만에 파리로 돌아왔다.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에 그는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하며 규제를 거부했다.

로마대상 이후 드뷔시는 전통에서 벋어나 더욱 독창적인 음악세계에 박차를 가했다. 기존의 화성법이나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한때 새로운 음악의 선구자로 바그너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바이로이트축제에 다녀온 후 그 역시 이전 시대에 묶여있는 작곡가라고 취급해 버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드뷔시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인상주의 음악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인상주의 미술사조에 사용된 용어를 음악에 도입한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구도나 형식보다 빛과 색을 중요하게 취급해 빛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는 풍광을 화폭에 담는다. 음악에 있어서 인상주의는 화성이나 음색을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와 감각적인 소리를 표출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선율은 반복하지만 발전하지 않고, 리듬은 반복적이지만 규칙적이지 않으며, 전통적으로 금지되어 왔던 병진행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화성은 3화음에 9음, 11음, 13음을 첨가하여 사용했고, 불협화음을 해결하지 않고 사용함으로써 기능화성의 원리를 무시한다. 또 온음음계와 5음음계 또는 8음계 등을 사용하여 다양성과 모호성을 가져왔다.

이러한 요소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에는 음향과 특별한 음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악에서는 각 악기가 지닌 고유한 음색적 특성을 부각시키고 음색을 대조시킴으로써 다채롭고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피아노 작품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에서 '달빛'처럼 동양음악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드뷔시는 그의 시대를 견인하여 20세기의 새로운 음악의 흐름을 주도했다. 그가 이룩한 획기적인 업적은 인상주의 음악을 확립한 것이다. 이후 수많은 작곡가들이 직간접적으로 드뷔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피에르 불레즈는 "현대음악은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으로 깨어났다"고 평가했다.

대구시합창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