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사업에 수억 원을 투자했다 실패한 50대 남성이 소송 상대 측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질러 7명이 숨졌다. 조절되지 못한 분노가 낳은 참극이다. 사건 속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단면들을 읽는다. 아파트를 부(富)의 증식 수단으로 여기면서 탐욕의 투기판이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머니 게임에는 낙오자가 나오기 마련인데, 결국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언론들은 분노 조절 장애가 빚어낸 참극이라고 사건을 규정했다. 분노 조절 장애의 공식적 명칭은 '간헐적 폭발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다. 분노와 관련된 감정 조절을 이성적으로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한국표준질병에 등재된 질병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질병명의 약자인 'IED'가 '사제폭탄'(Improvised Explosive Device·급조폭발물)의 약자와 같다. 하기야 제어되지 않은 분노는 폭탄 못지않게 위험하다.
현대는 분노의 과잉 시대다. 특히나 대한민국은 국민분노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간헐적 폭발 장애로 인한 진료 인원은 2013년 4천934명에서 2017년 5천986명으로 늘어났다. 2015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의 52%가 상당한 분노 감정을 경험하며, 치료가 필요한 분노를 경험한 비율도 11%나 된다. 이 정도면 가히 '앵그리(angry) 대한민국'이라 할 만하다.
'분노'는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다. 양극화와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해 있으니 사람들이 화내기 십상이다. 땅은 좁은데 경쟁마저 치열하고 게다가 국민들은 배고픈 것보다 배 아픈 것을 더 못 참는 성향이 있다. 분노 조절 장애는 개인의 감정이지만 사회 문제로 접근해야 마땅하다. 그 파괴적 감정 앞에서는 누구든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세대·젠더 간 갈등이 고조되고 진영 간 대립도 날로 심각해진다. SNS의 발달로 분노와 증오의 전염 속도는 빨라지고 범위도 넓어졌다. 그 모습이 압력 밥솥 같다. 폭발하지 않으려면 압력을 미리 빼 줘야 한다. 정치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히려 한 술 더 뜬다.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집단적 분노를 미화하거나 조장한다. 분노와 갈등을 부추겨 표를 전리품처럼 얻어 간다.
우리는 이제 스칸디나비아 3국(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을 배워야 한다. 국민행복지수가 아주 높은 나라들이다. 기대 수명, 복지, 경제적 평등, 정치가와 공무원의 청렴도 등 유엔이 발표하는 인간개발보고서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나라들이다. 그 행복 원동력은 자유와 타인에 대한 신뢰·존중이다. 돈이나 지위 같은 삶의 외형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부(富)의 분배가 탁월하고 국민 기본 욕구가 충족되니 종교를 믿는 인구 비율이 낮아도 사회 불안이 적다. 정치인들도 국민적 요구에 잘 부응한다.
대한민국도 이제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오히려 국민행복지수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해도 틀리지 않다. 평등과 공정은 삶에 있어서 기본적 욕구이자 자연스러운 추구 대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쟁취의 대상이 됐으니 국민들의 화가 치솟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국민들이 바뀌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치가 가장 앞장서야 한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검찰, '尹 부부 사저' 아크로비스타 압수수색…'건진법사' 의혹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