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 연극배우
샤워 후 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말리면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운 여름이 성큼 다가온 어느 날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온 후 처음 맞는 여름이었기에 벽에 걸려있는 에어컨들의 필터 청소를 해야 했다. 청소를 하다 문득 각 분야의 숨은 고수들을 찾아준다는 앱이 유행하고 있다던 얘기가 생각나 다운로드를 해보았다.
세상 참 좋아졌다. 작은 스마트폰 안에 별의별 고수들이 다 있다. 신나게 구경을 하던 중 언젠가부터 배우고 싶었던 대금과 판소리 고수들이 있을까 하고 검색해 보았다. 견적 요청을 보내자마자 내 주변에 있는 고수들이 레슨비 견적을 보내왔다.
견적을 보던 중 생각해 보니 나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손에 크레파스를 쥘 수 있을 때부터는 색칠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어머니를 졸라 꽤 오랜 시간 미술 학원에 다녔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피아노 치는 언니를 보고는 그게 너무 멋져 보여서 피아노 학원도 아주 잠깐 다녔다.
초등학교 졸업이 다가올 때쯤엔 가요프로그램에서 노래하며 춤추는 가수들을 보고는 매력을 느껴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를 해서 돌려보며 춤을 외워 따라 추곤 했다.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친구를 따라간 야구장에 푹 빠져서 마치 스포츠신문 기자가 된 양 매일 스포츠뉴스를 챙겨보며 다이어리에 경기 결과를 기록했다. 그걸로 만족하지 못한 나는 경기장에서 본 치어리더, 배트걸, 인형 탈을 쓰고 경기장을 누비는 마스코트가 되고 싶어 했고 급기야 야구선수의 아내가 되고 싶어 하기까지 했다. 직장 생활을 하던 때에는 갑자기 영어회화에 빠져서 MP3 플레이어에 팝송을 담아 출퇴근길에 들으며 외우기도 하고 우연히 알게 된 외국인 친구와 친하게 지내며 열심을 내기도 했다.
이렇게 쉬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던 어느 날, 옷에서 탈출한 단추를 다시 옷에 달아 주려는데 그 사소한 바느질 하나 할 줄 몰라 끙끙대는 내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침 여성인력개발센터에 옷 만들기 과정이 개설된 것을 발견하고는 바로 등록을 해서 봉제 기술을 배웠다. 연습용으로 어른 옷, 아이 옷을 만들어 어머니와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에게 선물도 하고 시간이 흘러 능숙해진 후에는 휴대용 아기침대를 만들어 SNS를 통해 판매를 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 피곤하다며 투덜거렸었는데 그 덕을 본 일도 있었다. 대학 편입 후 우연히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공연 내한 팀 댄서들의 의상 크루로 대구-대전 공연에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봉재 기술과 약간의 영어회화가 가능했기에 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건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이래서 내가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는 연극을 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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