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계절의 여왕 5월, 모든 방역 제한 조치가 풀린 일본은 3년 만에 제대로 된 황금연휴를 누렸다. 특히 연휴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란카쓰'를 하는 부모와 아이들의 소식이 있었다.
'란카쓰'란 '슈카쓰'(就活·취업을 위한 활동)나 곤카(婚活·결혼을 위한 활동)와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단어로, 란도셀을 구매하기 위한 활동을 뜻한다. 란도셀은 일본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메고 다니는 커다란 책가방이다. 내년 4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를 둔 부모가 란도셀을 구매하기 위해서 벌써부터 매장을 찾아다닌다니, 재미난 이야기가 아닌가.
교복을 입는 사립초등학교 학생이나 교복이 없는 공립초등학교 학생도 책가방은 란도셀이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인조가죽 가방이 5만 엔 정도라고 하니, 우리 돈으로는 50만 원이나 한다. 가장 선호하는 소가죽 가방은 70만 원, 매끄럽고 단단한 말가죽 가방은 100만 원이 넘는다. 란도셀이라고 하면 검은색의 크고 무겁고 딱딱한 이미지의 가방이지만, 최근에는 그 모양 그대로이기는 하지만 파스텔 색에 앙증맞은 무늬가 더해진 것들도 있다. 지금 주문해야 여름에나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5㎏이 넘는 크고 무거운 란도셀을 메고 등하교하면서 근육통을 호소하는 아이들도 있어서 '란도셀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있다. 교칙으로 란도셀을 메라고 정하는 경우도 있고, 설사 교칙이 없다고 해도 주변의 모든 학생이 란도셀을 메니 우리 아이만 다른 가방을 가지고 등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란도셀이 싫다는 이유로 등교를 거부하는 초등학생까지 등장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018년 학생들에게 책을 학교에 놓고 다니게 하자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초등학생들에게 물건을 잊어버리지 않는 습관을 가르쳐야 한다"는 이유로 책을 학교에 두는 것을 금지하는 학교도 있었고, 또한 숙제가 있어서 책을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것만인가. "란도셀은 초등학생이 넘어졌을 때 머리와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 초등학생의 공식 가방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본에서 란도셀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른 젊은 부모가 란도셀을 구입한다는 것은 바로 학부모가 된다는 '의례'와 같은 것이다. 6년 동안 내 몸의 일부처럼 메고 다닐 반짝반짝 빛나는 란도셀을 받고 "나는 이제 1학년이야!"라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내 아이의 새 출발, 내 인생의 한마디를 장식하는 감개무량한 순간을 느낀다. 눈물도 살짝 흘리면서 말이다. 그러니 자신의 키만 한 란도셀을 메고 90도 인사를 하고 폴짝폴짝 뛰면서 등교하는 뒷모습은 특별한 의미로 그려진다.
'란카쓰'라는 말이 있고, 입학 1년 전부터 고가의 가방을 준비하는 이런 풍토는 최근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저출산 때문이란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집안의 1, 2명 자녀는 귀하고 귀할 수밖에 없다. 부모는 물론이고 외가 친가의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고모까지 나서서 최고의 란도셀을 준비한다.
그러니 란도셀 회사는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다. 1949년 창업해서 현재 연간 약 1만8천 개의 란도셀을 판매하고 있으며, 도쿄 긴자와 요코하마에 직영점을 가지고 있는 '가방코보 야마모토'(鞄工房山本)가 토마토 재배를 시작했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식물공장으로 연중 생산이 가능하므로 또 하나의 수입원으로 기대한다. 이렇게 전혀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린 것은, 역시 저출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1년 출생수는 약 84만 명으로, 1899년 통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적은 수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고용 환경이 불안정한 이유도 있어서 그 감소율은 가속되고 있다. 야마모토 사장은 "저출산으로 란도셀만으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회사를 위해서 또 하나의 경영 기둥을 만들었다"고 했다. 란도셀 기술자에서 전신한 39세의 농장 책임자는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기술자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저출산은 이렇게 일본인들의 삶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우리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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