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윤 수필가
제법 큰 도로에 횡단보도가 그어져 있다. 여기만 오면, 어떤 스승이 떠오른다. 그분을 처음 본 것은 5, 6년 전이었다.
길 건너에 중·고등학교가 있다. 아침 8시 무렵, 학교에 가기 위해 길을 건너려는 학생들이 횡단보도로 모여들었다. 운전 중이던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한 남자가 횡단보도 한가운데까지 걸어오더니 두 팔을 벌려 차를 막아섰다. 그리고 길을 건너는 학생들을 향해 돌아섰다.
'갑자기 왜 저래?' 하마터면 남자를 칠 뻔했다.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다, 차량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보행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그렇지.' 나처럼 차량 신호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운전자들은 나처럼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횡단보도 정지선을 넘어 멈췄다.
'뭐야, 몸으로 차를 막겠다는 건가? 설마 본인이 터미네이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시선은 어느새 남자에게 고정되었다. 체구가 작고 무표정했다. 학생들이 인사를 하면, 목례를 하거나 무슨 말을 하며 입꼬리만 살짝 올릴 뿐이었다. '선생님인가.' 남자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횡단보도 위에 있었다.
어느 날, 몸이 좋지 않았다. 병원에 가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숨이 차고 현기증이 났다. 신호가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를 보니 할머니 한 분이 나보다 더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뛰듯 걷는 할머니도 그랬겠지만 나도 조바심이 났다. 보행 신호등은 이미 빨간색으로 바뀌었지만 남자는 나와 할머니를 재촉하지 않았다. 나와 할머니가 무사히 길을 건너자 그제야 횡단보도에서 몸을 거두었다.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거나 먼저 주행하지 않았다. '아, 감사합니다. 매일…, 쉽지 않은 일인데.' 비가 오거나 무더운 날에도 선생님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횡단보도에 나오셨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이곳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보행자를 한 번 더 살피며 조심히 운전을 하게 되었다.
오늘도 선생님은 횡단보도에 계신다. "00아, 아침 뭇나?" "00아, 오늘 왜 이래 피곤해 보이노? 어디 아프나?" 선생님은 누구에게 평가받기 위함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마중을 행하고 계신 거였다. 교실에서의 백 마디 가르침이 아니라, 단순한 통학 지도가 아니라, 교문 밖 마주침을 통해 사랑을 깨우치게 하는 선생님의 노고에 숙연함마저 든다.
학생들은 마중의 의미를 알까. 점수에 연연한 책상머리 지식이 전부가 아니다. 몸으로 길을 막아서며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선생님의 모습 속에 학생들의 인성도 바르게 성장할 것이다.
교실에서의 인연은 없지만, 나는 선생님을 길 위의 스승으로 모셨다. 스승의 가르침은 내가 사는 동안 오래오래 화두가 될 것 같다. '아이들아 저기 스승이 마중하신다. 어서 가서 기쁘게 마중을 받으렴.'
경구중학교 이경오 교감선생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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