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전 11시 30분쯤의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구 계산성당 앞에서 인파에 휩싸여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시민의 요청에 인증샷을 함께 찍기도 했다. 20분쯤 후에는 근대골목 투어에 나서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을 지나는 윤 대통령의 모습도 보였다. 경호 차량이 인근 도로변 가득 늘어서 교통정체를 빚고, 골목 곳곳에서 경호원들을 목격할 수는 있었지만 삼엄한 경계가 이뤄져 불편한 느낌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엑스코에서 열린 세계가스총회(WGC 2022) 행사에서 지역 기자들의 취재를 막은 문제 때문이었다. 세계가스총회는 대구에서 몇 년을 야심 차게 준비해 온 국제 행사인 만큼 지역 언론사들이 적극 취재에 나섰지만 시작부터 가로막혔다. 전날 밤 늦게 가스총회 조직위는 지역 기자들에게 "유관 기관의 보도 불허 지침이 전달됨에 따라 (지역) 기자들의 전시회 및 총회 입장을 오전 11시까지 제한하게 됐다"는 이메일을 보내고, 당일 현장은 물론 기자실 사용마저도 제지한 것이다. 반면 대통령과 함께 동행한 청와대 풀 기자단은 자유롭게 취재를 진행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공식 행사 석상에서의 대통령 개회사 모습을 취재하는 게 뭐 그리 위험한 일인가. 서울 풀 기자단은 되는데, 지역 취재진은 왜 가로막는 건가. 오히려 대통령이 길거리를 걸으며 골목 투어를 진행하는 게 예상치 못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지 않나. 게다가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당선인 신분일 때도 대구·경북, 광주·전남에서 지역 언론 취재를 막으며 '지역 언론 패싱'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사실 이 같은 지역 홀대가 비단 윤석열 정권만이 아니라 늘 되풀이돼 왔다는 점이다. 지역에서 벌어진 현안임에도 중앙정부가 개입할 경우에는 지역 언론은 취재에서 배제되는 일이 과거에도 곧잘 있었다. 지난 2019년 10월 31일 7명의 사망자를 낸 독도 헬기 추락 사고가 발생했던 때의 일이다. 당시 중앙정부 차원에서 대구 달성군 강서소방서에 범정부현장수습지원단을 마련하면서 유가족들이 거기에 머물렀고, 당연히 지역 기자들은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며 취재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사고 24일 만인 11월 23일 진행된 유가족과 기자단의 독도 사고 현장 방문에 중앙의 풀 기자단만 취재할 수 있다고 전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매일 소방 관계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온갖 욕을 다 먹고, 함께 눈물 콧물 흘려가며 한 달 가까이 '뻗치기'(현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대기하는 행위를 일컫는 기자들 은어)를 해왔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은 현장에 코빼기 한 번 비친 적 없는 중앙 기자들 몫이라니.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악쓰고 싸운 덕분에 지역 언론사 가운데 기어이 매일신문 기자 한 명은 독도 현장취재에 동행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분은 좋지 않았다. 중앙정부가 지역과 지역 언론을 바라보는 방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왜곡되고 뒤틀려 있는지, 아니 아예 인식조차 없는지를 뼈아프게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후 재연된 지난 24일의 지역 언론 패싱 사태를 보면 우리나라 중앙정부 공무원들의 지역에 대한 인식 제고가 필요함을 새삼 실감한다. 아무리 우리나라의 중앙집중화가 심각하다 하더라도 지역을 팽개치고는 국가를 끌어갈 수 없다. 서울·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인구 55.3%에 대한 존중의 정치와 행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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