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나 훌라 대표
우리가 무엇에 대해 쓴다고 할 때 모든 걸 다 담기란 불가능하다. 언제나 초과되거나 불충분한 영역이 남기 마련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어떤 도시에 대해 우리가 다 알 수도 없지만, 안다고 하더라도 그 모두를 담는다는 건 불가할뿐더러 불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개인의 그물망을 전제하는 이상 그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까지 붙잡는 건 위선이나 허위의식의 산물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들이 중요해진다. 일관된 이야기의 허상을 고발하고 틈새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대안적 이야기가 들려질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땅을 잡아먹는 범세계적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부동산 투기'나 '젠트리파이어'(쇠퇴했던 구도심을 특색 있는 장소로 탈바꿈시켜 사회·경제·문화적으로 활성화하는 계층) 같은 용어는 어느덧 익숙해져 버렸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찍어내듯 어느 곳이나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동네마다 저마다의 동네다움을 지니는 것이며, 무슨 경쟁력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위한 도시이다.
서구의 도시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방식의 도시계획이 도입되고 이후 독재정권하에서 식민지 도시계획이 답습되면서 진행된 도시화 과정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오래된 주거지에는 삶의 시간이 펼쳐낸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있던 곳,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기와 분단 이후, 경제개발기와 IMF를 관통하면서 여전히 남아 있는 지역에는 통째로 밀어 버리거나 지워서는 안 되는 시대의 맥락과 공동체적 삶이 존재한다.
물론 오래된 주거지의 생활 조건 개선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브랜드 아파트로 대체하는 방식의 재개발이 그 개선을 의미하진 않는다. 요새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들 중에 '엘사' '빌거지'가 있다고 한다. 언뜻 무슨 뜻인지 갸웃했는데, 알고 보니 'LH 아파트'에 '사는' 아이를 일컬어 '엘사', '빌라'에 '사는' 아이를 '빌거지'라 부르며 따돌림을 한다고 한다. 브랜드 아파트에 살지 않는 아이들은 무리에 끼일 자격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어디에 사는가가 그 아이의 계급을 지칭하는 말이 되며 이것이 아이들을 구별 짓고 놀리는 기준이 되었다. 이런 말들이 초등학생들 사이에 오간다는 건 무얼 뜻하는가. 이미 어린아이들에게조차 도시의 삶이란 '빗장 공동체'와 '부동산 계급'이라는 자본주의적 가치로 환산되는 방식 속에 다 휘어들어가 버린 것일까.
대구에서도 몇 년 전부터 아파트 부동산 재개발이라는 단일한 방식으로 찍어내기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브랜드 아파트를 위시한 철거와 재개발의 문제는 단순한 둥지 내몰림 현상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어디에도 없는 그곳의 문화와 생태계를 어디에나 있는 아파트로 치환하는 방식의 사이클로 도시를 견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지만, 비평 없는 도시재생은 성립이 불가능하다. 도시재생구역에서 일어나는 철거와 아파트 재개발 풍경을 떠올려 보면 방향 없는 도시재생뉴딜사업이 도시 지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상징적으로 일부만 브랜딩하고 그 마을 생태계의 가치를 일축하는 상업적 재생사업은 결코 진정한 '재생'을 이룰 수 없다. 입체적인 맥락 속에서 그 지역의 문화에 기반해 접근하였을 때 비로소 그 지역의 가치를 잇는 새로운 재생 사이클의 씨앗이 싹틀 수 있다.
그럼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물론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지만 이런 흔한 비판으로만 그쳐선 안 된다. 도시에 대한 새로운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무언가 사라지기 시작할 때가 아니라 아직 그곳에 있을 때 있는 것들로부터 재발견을 이루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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