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우리의 선택지에는 절박한 정치인이 있을까

입력 2022-05-19 19:56:50

장성현 사회부 차장
장성현 사회부 차장

임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권영진 대구시장의 표정은 꽤 여유로워 보였다. "요즘은 제가 밥을 마음대로 사요. 술도 마시고, 누가 골프를 치러 가자고 하면 시간만 맞으면 거절을 안 해요. 하하." 그는 "그런데 만나는 사람마다 서울에 언제 올라가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대구시장은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자리이고, 가장 열정을 쏟았던 자리인데 아직 대구 사람 대접을 못 받는다"며 씁쓰레해했다. 권 시장은 앞으로 계속 대구에 터를 잡을 생각이다. 노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 집도 이미 구했다.

다만 수원에 있는 어머니를 대구로 모시기 전에 두 달간 '휴가'를 갈 계획이란다. 돼지 저금통에 모은 돈으로 3년이나 미뤄 뒀던 결혼 30주년 기념 여행을 갈 생각이라고 했다. 저녁마다 신천변을 걷는 권 시장도 만날 수 있겠다.

권 시장을 두고 시청 직원들은 "합리적이고 열정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끔 열정이 지나칠 때도 있지만 직원 얘기를 경청하고 설득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기자 만나기를 꺼리지 않고, 특유의 달변으로 현안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대구가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몰리던 2020년. 그는 야전침대에서 잠을 자며 치열하게 일했다. 매일 오전 기자 브리핑을 열었고, 하루 종일 대책 마련에 몰두했다.

그러나 권 시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냉혹했다. 그의 장점인 달변이 설화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신천지와 관련 있다는 허황된 소문에 시달렸고, '백신 사기'를 당했다는 오해도 받았다. 백신 사기 해프닝은 50%가 넘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인재풀이 좁아 회전문 인사를 한다는 평가도 있었고, 주변 인사들이 구설에 오르면서 비난의 화살이 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 시장 재임 8년 동안 대구의 숙원 사업들이 대거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K2 군공항 이전이나 취수원 다변화, 대구시청 신청사 건립 등 해묵은 숙원 사업들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숙원 사업은 해결 과정이 지난하고 갈등의 골이 깊으며 넘어야 할 과제가 첩첩산중이기에 숙원이다. 이를 현실의 장으로 끌고 나왔다는 건 갈등과 대립, 마찰과 직면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권 시장은 "다시 정치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8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세상을 바꾸지 못했어요. 도돌이표, 또 도돌이표야. 시장이든 장관이든 총리든 결국은 다 행정이에요. 그런데 행정으로는 대구를 못 바꿔요."

결국은 정치를 바꿔야 세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대구는 다 쓰러져가는 대감집 같은 도시라고 했다. "청년은 청년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하는데 어른들은 정열이 남아서 온 동네 간섭을 다 하고, 청년들은 기를 펴지 못하고 슬슬 대구를 떠나려고 합니다. 이걸 바꿔 보려고 8년 동안 애를 썼는데 결국 바꾸지 못했어요."

그는 대구의 맹점으로 "대구는 절박한데 대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절박하지 않은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치인은 절박한 사람이 자신을 던져 대구를 위해 일할 수 있느냐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6·1 지방선거, 우리의 선택지에 과연 절박한 정치인들이 올라 있을까.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는 게 선거라지만 대구 시민을 위해 몸을 던질 절박한 정치인 찾기, 이번엔 부디 성공하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