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발달에 중요한 건 유전보다 환경" 정미령 옥스포드대 명예교수

입력 2022-05-22 13:35:58 수정 2022-05-23 11:04:58

대구서 고교생 특강…"부모가 아이들 관심 분야 지속 관찰 재능 잘 키울 수 있는 상황 만들어야"
"지금 한국 사교육은 권장할 것 못 돼"

18일 대구 남구 우봉아트홀에서 협성고, 경일여고, 경북예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연 정미령 옥스포드대 명예교수. 정 명예교수는
18일 대구 남구 우봉아트홀에서 협성고, 경일여고, 경북예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연 정미령 옥스포드대 명예교수. 정 명예교수는 "지능이나 재능은 유전되는 것 보다는 이를 발현시킬 수 있는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이화섭 기자.

2014년 잭 햄브릭 미시간주립대 교수 연구팀은 "선천적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대가가 될 수 있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해 화제가 됐었다. 결국 노력보다는 재능이 우선한다는 결론인데, 이 논문이 우리나라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 '노력은 쓸모가 없고 결국 재능이 있어야 성공한다'며 낙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 18일 재능이 없다고 낙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 한줄기를 전한 세계적 석학이 대구를 찾았다. 교육심리 분야의 대가인 정미령(77) 옥스포드대 명예교수는 이날 대구 협성고, 경일여고, 경북예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인간의 지능은 유전적이거나 선천적 요인보다는 이를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명예교수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 최초의 한국인 교수로, 80년대 당시 인간의 지능을 수리와 언어만으로 측정하는 '아이큐 이론'에 반대하는 이론으로 '인지의 자율성'을 주장했다. '인지의 자율성' 이론이란 인간은 각자 타고난 재능이 다르고 이 재능을 어떻게 사용하며 시간을 보내는지에 따라 재능을 발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래서 정 명예교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부모의 관찰이다.

"아이들, 학생들은 좋아하는 것이 다 달라요. 좋아하는 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들이 아이들과 놀면서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분야를 잘 습득해나가는지 계속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무의식 중에 하는 장난이나 행동 속에 재능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2005년 '평범한 10대, 수재로 키우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던 정 명예교수는 당시 책에서도 그랬듯 아이들의 재능 발현에 있어 주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그러나 한국의 학부모들이 '환경'이라는 말을 오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18일 대구 남구 우봉아트홀에서 협성고, 경일여고, 경북예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연 정미령 옥스포드대 명예교수. 정 명예교수는
18일 대구 남구 우봉아트홀에서 협성고, 경일여고, 경북예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연 정미령 옥스포드대 명예교수. 정 명예교수는 "지능이나 재능은 유전되는 것 보다는 이를 발현시킬 수 있는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이화섭 기자.

"한국 학부모들은 엄청난 사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공부할 환경을 만들어왔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환경'을 잘못 해석한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아이가 재능을 나타내는 분야를 잘 배우고 키워나갈 수 있는 과정이나 주변 상황 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능력에 맞지 않게 모든 걸 배우게 하는 지금 한국 학부모들의 태도는 권장할 것이 못 됩니다."

한국 교육에 대한 문제점도 함께 지적했다. 정 명예교수가 보는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이든, 학교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기회와 자유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 게다가 대학들도 각자의 특색과 강점을 가지지 못하고 모든 학과를 백화점식으로 가져가려는 상황 또한 문제라고 봤다.

"옥스포드 대학의 경우에도 인문학은 강하지만 공학 계열은 없거나 다른 대학보다 약한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만 1948년 이후 임명된 영국 수상 17명 중 14명이 옥스포드대 출신이죠. 대학이 인문학 중심으로 인간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학문을 강점으로 가져가다 보니 이를 아우르는 지도자도 만들어냈던 겁니다."

마지막으로 정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가 국가적으로, 혹은 한국인으로써 추구해야 할 절대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육에서도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제는 한국인이 추구해야 할 절대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 속에는 결국 지금 사회의 임금제도나 채용 과정에서 소위 '일류학교'만 받으려고 하는 세태도 원인일 수 있어요. 사회가 추구하는 어떤 가치 없이 비교 경쟁만 진행하니 다들 괴로운 거죠. 이는 인간의 성장을 죽이는 야만입니다. 한국이 지금까지 발전해 온 과정 속에서 한국인이 살면서 품고 가야 할 보편타당한 진리와 가치를 세워나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