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정 고산도서관 사서
코로나19가 세상을 조용하게 만들기 전, 도서관에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대상으로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당시 어린이자료실에서 근무하고 있어 어린이 견학 프로그램 담당자로서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
먼저 견학 순서에 따라 아이들에게 도서관에서 지켜야 할 이용수칙과 이용예절을 알려줘야 했다. 단순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며칠째 고민하고 있었다. '어떤 책이 좋을까'하고 자료실 서가를 몇 바퀴째 돌고 있을 때였다. 도서 반납대에 무심하게 놓인 책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책 제목은 '도서관에서는 모두 쉿!'이다. 내가 도서관 어린이자료실에서 근무하며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쓰는 말이기도 해서 속으로 뜨끔했지만 '딱이다' 싶었다.
이 책은 주인공 캐리가 사서가 되어 동물 친구들을 도서관에 초대하는 상상을 하면서 시작한다. 으르렁거리는 사자, 장난꾸러기 원숭이, 걸을 때마다 쿵쿵대는 코끼리…. 다양한 동물 친구들에게 도서관 이용예절을 알려주고 함께 책을 읽는다.
도서관에서는 왜 조용히 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는 글과 예쁜 그림으로 잘 표현했다. 책을 읽는 동안 자료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떠드는 아이들에게 '쉿!'을 외치는 내 모습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아이들의 상상은 틀 안에서만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기분전환이 되곤 한다.
새 학기를 맞아 견학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어린이집 아이들이 도서관을 방문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손을 잡고 들어온 아이들은 선생님의 사전교육 덕분인지 조용히 해주었다.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 이내 시끌시끌해지며 분위기가 산만해졌고 나는 '쉿!'을 외쳤다. 그리고는 캐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귀 기울여 잘 들어 주었다. 이어진 자유 독서 시간에도 각자 캐리가 되어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해졌다. 한편으로는 '쉿!'이라는 말 한마디로만 아이들을 대했던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우리들 머릿속에는 커다란 생각주머니가 하나 있는데, 그 속에는 우리를 지혜롭고 현명하게 만들어 주는 갖가지 생각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샘물과 같아서 꺼내면 꺼낼수록 자꾸만 샘솟는답니다." 어느 날 책을 통해 읽은 한 구절이다. 아이들의 생각주머니에서 많은 것이 샘솟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또한 사서의 역할이 아닐까.
이후로도 견학을 오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며 도서관이 좀 더 친근하고 즐거운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본 수많은 아이 중에서 미래에 멋진 사서가 될 꿈을 키우는, 또 한 명의 캐리가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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