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 연극배우
7년 전, 한 극단의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제작되었던 '궁극의 절정, 그 전율 맥베스'라는 신체극에 레이디 맥베스로 출연을 한 적이 있다.
때는 편입을 한 지 1년이 지나고 3번째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다. 우연히 SNS에 게시된 '신체극-맥베스' 오디션 공고를 보게 됐다. 머릿속에 온통 맥베스 생각뿐이었던 때에 운명처럼 발견한 오디션이었기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지원했다
대학 편입 후 수업 시간에 '맥베스'라는 희곡을 처음 읽고는 그 작품에 깊이 매료돼 언젠가 맥베스라는 공연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레이디 맥베스를 연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희대의 악녀인 레이디 맥베스의 내면이 궁금해졌고 왜인지 그녀를 이해해 보고 싶어졌다. 어떤 이유에서도 악행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라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극단의 관계자는 '공연에 참여하게 되면 연습 일정 때문에 학교를 계속 다니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것이 나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토록 갈망하던 공연을 할 수만 있다면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10~20년을 연극 무대에 섰던 선배님들 앞에서 겁도 없이 레이디 맥베스를 꼭 하고 싶다며 눈에 불을 켜고 오디션을 봤다. 당연히 많이 부족하고 어설픈 연기를 했지만, 간절함이 전해졌던 것일까 연출 선생님께서는 햇병아리였던 나를 레이디 맥베스로 무대 위에 설 수 있게 해주셨다. 공연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잘 해내지도 못했고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연에서 간절히 원하던 배역을 연기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을 잊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나는 쉬지 않고 무대에 오르고 있지만, 어느새 그때의 다짐은 사라지고 당연한 듯 습관처럼 무대에 오르고 있다. 간절함과 뜨거움도 많이 식어버렸다.
지난 주말, 공연 관람을 위해 서울에 다녀왔다. 나를 레이디 맥베스로 무대에 세워주신 연출 선생님의 극단에서 맥베스를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달려갔다. 왜일까. 객석에 앉아 공연을 기다리면서부터 가슴이 벅차오르더니 공연이 시작되고 익숙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하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꿈틀거렸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 기차 안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7년 전 뜨거웠던 열정과 초심을 잃어버린 지금 나의 모습이 스스로 너무 부끄러운 것이었다. 언젠가 또다시 지금 이 마음이 잊히는 날이 올지 모르겠으나 그때마다 다시 초심을 떠올리며 어떤 공연, 어떤 배역이든 무대에 서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함을 잊지 않으리라 다시 한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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