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동행

입력 2022-05-19 09:57:42

김아가다 수필가(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아가다 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아가다 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조그만 것이 예쁘고 앙증스럽다. 노란 민들레와 보라색 제비꽃이다. 담벼락 작은 틈새에 두 녀석이 바람에 맞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평평한 땅에 떨어져 싹을 틔웠으면 좋았으련만, 하필이면 담벼락일까. 살랑거리는 바람이 씨 옮기기에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생김과 종자가 다른 작은 꽃 두 포기가 껴안고 어루만지는 모습이 꼭 내가 아는 다문화 가정의 농촌 신랑과 베트남 신부 같다.

손짓, 발짓으로 무언의 대화를 하며 시집살이를 헤쳐 나가던 그녀가 겨우 사랑을 느낄 즈음 남편이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었다. 들일을 끝낸 뒤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시고 집으로 오는 길에 경운기와 트럭이 정면으로 부딪쳤다고 한다.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었는데, 아내의 지극한 정성으로 목발을 짚고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작은 몸짓으로 동동거리며 바쁘게 산다. 낮에는 재배한 농산물을 구판장으로 배달하고 저녁이면 남편의 병실로 달려가며 두 가지 몫을 혼자서 다 해낸다. 소통되지 않는 시댁 식구들과 좌충우돌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부족한 남편의 버팀목으로 살아가는 억척스러운 여인이다.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 속에 살면서도 조용한 날이 없었던 나의 시집살이를 생각하면 그녀의 고달팠을 인생살이가 짐작된다.

사랑보다 돈이 우선된 부부관계는 모래 위에 세운 집과 다름없다. 신랑 처지에서는 농촌으로 시집오려는 한국인 신부가 귀했을 것이고, 신부 또한 찢어지게 가난한 삶이 지겨워 낯설고 물선 이국땅으로 시집을 왔으리라. 삼촌이나 아저씨뻘 되는 남자를 신랑으로 만나 적응하려면 그 생활은 오죽 고달팠을까.

우리 민족은 예부터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손바닥만 한 땅에서 '우리끼리'라는 외고집으로 타민족을 경원시해 온 것도 사실이다. 저개발 국가의 아가씨들이 꿈을 안고 한국으로 건너오지만 뿌리를 내리고 성공한 사례보다 실패하여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노란 민들레는 외래종이며 제비꽃은 순수한 우리나라 토종이다. 제비꽃은 타종과의 교접을 꺼리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본 것은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 민들레와 제비꽃이 단단히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동행을 떠올리는 것이다. 목발 짚은 남편을 부축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베트남 신부의 믿음직한 모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