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전화번호가 많이 노출된 편이다. 그런 탓에 선거철만 되면 정치 스팸 문자와 전화 폭탄을 경험한다. 6·1 지방선거가 열리는 올해는 유독 더 심하다. 모르는 번호의 전화나 문자가 오면 정치 스팸이다. 투표할 마음마저 싹 달아나게 만들 정도로 징글맞게도 많이 걸려온다. 지난 대선 때 허 모 후보가 써먹어 전국적으로 '벤치마킹'된 사실상의 사전 선거운동 수법이다.
그런데 지난 주부터 약속이나 한 듯 정치 스팸들이 뚝 끊겼다. 소위 풀뿌리 지방선거 선량(選良)을 꿈꾼다는 이들이 집단으로 개과천선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전화 많이 돌리느라 선거 자금이 바닥났나? 생각해 보니 대구경북(TK)의 독특한 정치 지형 때문에 생긴 특이 현상이라는 자답에 이르게 된다. 아하! 국민의힘 TK 공천이 마무리됐지.
TK에서 공천은 당선과 동의어다. 공천을 받으면 게임오버인데 어느 바보가 돈 많이 드는 선거 스팸 전화에 피 같은 돈을 쓰겠는가. 16일 기준으로 본 선거가 보름여 남았고 공식 선거운동이 19일부터 시작되지만 적어도 TK에서의 이번 지방선거는 벌써 파장 분위기다.
31개인 시·군 기초단체장의 경우 TK에서는 3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국가의 주인인 유권자들이 내 고장 단체장을 뽑는 권리를 원천 '박탈'당하는 셈이다. 민주주의에서 무투표 당선이 웬 말인가. 차선책으로 찬반 투표라도 거치면 좋겠지만 현행 선거법상 불가능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나마 현직 시장·군수 8명이 국민의힘 공천에서 배제되거나 경선 탈락한 경북과 달리, 대구에서는 8명의 현역 기초단체장 중 6명이 공천을 받았다. 한 번 기초단체장이 되면 12년이 보장되니 이보다 꿀 같은 '현직 프리미엄'도 없다. 대구가 잘 풀리는 도시라면 이해나 해줄 법하겠지만, 주지하다시피 28년째 일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꼴찌다. 대구의 현직 구청장들이 일을 잘했다고 보기 어려운 까닭 중 하나다.
현직 단체장들은 과장을 좀 보태 4년 임기 내내 세금을 쓰며 선거운동을 하고 다닌다. 관변단체장 인사권을 행사해 당원 투표,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반면, 정치 신인들에게는 이번에 3일간의 선거운동 기간이 주어졌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끼고 다니다 보니 얼굴 알리기도 쉽잖다. 고작 몇백 명 안팎의 여론조사는 하나 마나다. 너무나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이라도 좀 분발하면 좋겠지만 이쪽 사정은 더 나쁘다. TK에서는 후보조차 못 낸 선거구가 수두룩하다. 민주당으로서는 역대 최악의 대구경북 선거라는 말이 벌써 나올 정도다. 인재 풀(pool)이 바닥난 상황에서 시의원 비례대표 공천 내홍에다 내부 총질까지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된다. 168석 거대 야당으로서 공당 역할을 대구경북에서 하고 있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든다.
풀뿌리 지방자치에서 선출직들의 견제 없는 연임을 막지 못해 생겨난 지방권력 카르텔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조차 없다. 요즘 유행어로 '고인물'이라는 표현이 있다. 국내 한 게임 개발자가 내뱉은 실언이 유행어가 된 사례인데, 오래되어 활력이 없고 정체되거나 아예 쇠퇴하는 상태, 또는 그러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TK 정치권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다. 고립돼 갈라파고스화하는 'TK 정치 고인물'을 정화할 신선수(新鮮水) 갈증이 절절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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