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윤하 시인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소파 방정환과 색동회가 1923년에 발표한 후 어린이날 100주년 되는 해이다. 1957년 동화작가협회에서 제정하고 보건사회부에서 '어린이 헌장'을 발표했다. 인구 절벽 시대에 귀한 아동의 권리를 말하고 싶으나 오늘은 어른의 책무를 말하려 한다.
금호강 주변에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분리 설치되어있다. 산책로에서 가문 땅을 뚫고 고개 내민 새싹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무럭무럭 자라 여름이 되고 어른이 되어 실한 열매 맺기를 바라며 노랑 애기똥풀에게 물 한 모금 주었다. 그때 내 허벅지를 무언가 툭! 쳐서 휘청였다. 6학년쯤 된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갔다. 아이가 넘어질까 봐 걱정하는 사이 또 엉덩이를 차여 주저앉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쓱 올린 장난일 뿐이었다. 내가 쓰러지자 둘은 뒤돌아보며 깔깔대며 '거 봐!' 하며 빠르게 페달을 밟았다.
그들은 한쪽 다리를 올리고 산책하던 노인을 차고, 또다시 다른 사람을 차며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갔다. 멍청하게 서서 '그런 장난은 안 돼!'란 말도 못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율하 잠수교에서 여섯 명의 자전거부대가 왁자지껄하며 사람들 사이사이로 달려오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눈에 익은 잠바를 입은 두 아이가 보여, '얘들아 잠깐만!'하고 팔을 흔들었다. 그들은 내 팔을 치고 강둑으로 일제히 올라갔다. 강둑 위로 오르자 자전거를 세우고 내려다보며 '따라와 봐! 못 따라오겠지?' 하며 박장대소하는 것이다. 놀이에서 시작된 장난이 단체가 되어 훨씬 과감해 졌다. 붙잡히지 않을 확신과 붙잡혀도 상관없음을 공유하는 듯했다.
어릴 적 엄마의 주머니에서 1원을 훔치던 생각을 했다. 엄마에게 들켜 크게 혼이 난 후 엄두도 내지 않았다. 나의 딸도 집안 동전들을 모아 나가자 혼쭐을 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참외 서리한 것을 추억한다. 그 끝자락엔 늘 밭 주인이 찾아와 덜덜 떨며 숨었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아이스께끼, 똥침 놓기 등 심한 장난에는 동네 어른들의 지적이 뒤따랐다. 가시박이 새싹으로 올라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이 되면 덩굴손을 뻗어 주변 식물들을 고사시킬 텐데. 경찰에 의뢰하면 촉법소년이라고, 바쁘다고, 조사하지 않을 텐데…
돌아오는 길에 그 애들 모습이 찍혔을 시시티비를 보며 생각했다. 저 아이들에게 반드시 추적될 수 있음을 주지시켜야 되지 않을까. 부모에게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 익명성의 '묻지마 xx'를 키워나가면 안 될 텐데. 어린 시절 재밌는 놀이로만 추억하면 좋을 텐데.
'어린이 헌장' 속 교육할 어른의 책무! 지는 해의 염려가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내일의 해가 구름 끼지 않고 붉은 여명으로 떠오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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