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TV ‘생존남녀’, 서바이벌로 풀어낸 남녀 실험
남녀가 한 공간에 떨어져 생존해야 한다면, 이들은 서로 살아남기 위해 대결할까 아니면 화합할까. 카카오TV '생존남녀'는 남녀가 팀을 이뤄 벌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지만, 그 구성을 통해 보이는 건 남녀라는 성차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그로인한 결과에 대한 실험이다.
◆생존 상황서 어떤 선택할까
5명씩 남자팀과 여자팀으로 나뉘어 각각의 쉘터로 들어가 10일 동안 더 많이 생존하는 팀에게 1억 원의 상금이 제공된다. 카카오TV '생존남녀: 갈라진 세상'(이하 생존남녀)은 수풀과 잡초들이 아무렇게나 자란 살풍경한 커다란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익숙한 서바이벌 게임의 형식이지만 그저 두 팀으로 나뉘어 하는 게임들과 차별화되어 있는 건 남녀를 각각의 팀으로 나누어 놓았다는 점이다. 남자와 여자는 생존 상황에 있어서 어떤 다른 선택을 할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바로 그런 관전 포인트다.
'생존남녀'는 그래서 첫 회에 남자와 여자의 성향을 비교하며 보여준다. 남자팀은 만나자마자 나이를 묻고 서열을 정하려 하며, 침상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들어오는 순서대로 '선착순' 방식을 취한다. 또 마치 군대 시스템처럼 리더와 참모 역할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여자팀은 나이보다 MBTI 같은 걸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을 서로 알아가려 한다. 나이나 서열은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침상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서로의 의향을 먼저 물어본다. 러더나 참모가 필요하다 여기지만, 그것을 상명하복식의 명령체계가 아니라 그저 그런 역할이 있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먼저 들어가기 전 100초의 시간 동안 세 가지 물품을 선택할 수 있는 지점에서도 남녀는 그 생각이 갈린다. 남자팀이 밤에 외부를 탐색하거나 활동할 때 쓸 수 있는 플래시, 지도, 칼, 밧줄 같은 걸 고르고 담배를 챙겨오거나 하는 반면, 여자팀은 먹을 물이나 소시지, 추위에 버틸 침낭, 수면잠옷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서바이벌에 중요한 역할을 할 가스버너(불)를 챙겨온다.
벌써 가져온 물품에서부터 느껴지듯이 남자팀은 이 서바이벌을 '모험' 같은 것으로 여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상황에 뛰어들고 그런 경험들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성향이 그 물품들 속에서 느껴진다. 반면 여성팀은 '생존' 자체에 더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바깥을 탐색하긴 해야겠지만 굳이 무모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중히 움직이고 쉘터 안에서 버텨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다소 모험을 벌이려는 남성팀은 이 때문에 많은 곤란을 겪는다. 즉 바깥 공간을 활보하고 다니는 술래가 있는 걸 모르고 첫 날 자신들의 보급품은 물론이고 여자팀의 보급품까지 약탈을 하지만 그 대가로 한 명이 술래에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된다. 여자팀은 보급품을 약탈당하긴 했지만 술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남자팀이 붙잡힌 상황을 보고 깨닫는다.
남자팀은 술래에게 한 명이 붙잡혔지만 그런 리스크를 통한 경험치들이 자신들을 업그레이드해줄 거라 생각한다. 반면 여자팀은 숫적으로 자신들이 우세하다는 걸 믿고 굳이 모험을 걸려 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불을 가진 여자팀은 음식을 끓여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세를 보이고, 남자팀은 어떻게든 여자팀과 협상해 불을 얻어내려 하지만 그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과연 리스크를 감수하는 남자팀과 쉘터 안에서 버텨내려는 여자팀은 어느 쪽이 우세할까. 그 생존방식 차이에 따른 결과에 대한 호기심. 이것이 '생존남녀'가 초반 시선을 잡아끄는 지점이다.
◆소통의 부재가 만든 남녀 갈등
그런데 이렇게 남자팀과 여자팀을 나누어 놓고 서로 대결구도를 세우자 두 팀의 갈등이 시작된다. 물을 얻을 수 있는 수원지에서 두 팀은 잠깐 마주치지만 그걸로 그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각 팀은 상대팀에 대한 반감을 쌓아간다. 보급품 약탈이 불러온 첫 번째 갈등 이후에도, 감옥에 갇힌 팀원을 구해내려 들어간 팀이 자기 팀원만 구해내고 나오는 일이 생기면서 반목은 더 심해진다. 또 서로 떨어져 있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은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오해도 낳는다. 갈등은 점점 커지고 상대팀에 대한 욕설이 나오기 시작한다.
남자팀은 남자팀대로 여자팀은 여자팀대로 치열한 생존상황 속에서 더 끈끈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남녀로 나뉘어 끈끈해지는 상황에서도 상대팀에 대한 반목은 더 커진다. 상대를 적으로 상정함으로써 같은 팀의 유대가 강화되는 과정도 드러난다. 이건 서바이벌 게임이지만 이를 관찰카메라를 통해 관망하는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훨씬 더 메타적 관점에서 왜 남녀 간의 갈등과 반목이 심해지는가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그건 마치 우리네 현실이 마주하고 있는 남녀 갈등의 양상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남녀를 갈라치기 해놓고 서로의 팀을 나눠 상대를 혐오하는 방식을 취하면 내부 단결은 더 공고해지지만 외부 갈등은 더 첨예해진다. 지난 대선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갈라치기' 혐오 정치의 양상이 놀랍게도 '생존남녀'의 실험 속에 고스란히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들을 다시 한 자리에 모아 놓으면 그러한 갈등이 해소되고 화합의 길이 열릴 수 있을까. 6일차에 이르러 '생존남녀'는 새로운 룰을 공개한다. 기존 쉘터를 벗어나 남녀가 중앙 쉘터로 모이는 것. 그래서 함께 생존해나가는데 10일 차에 두 쉘터 중 한 곳에 비밀투표하고 최다인원이 투표한 쉘터가 1억 원을 나눠 갖는 것이 그 새로운 룰이다. 이 새로운 룰에서는 사실 남녀가 함께 화합해 각자가 잘하는 역할을 해내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하지만 지난 5일 동안 남자팀, 여자팀으로 나뉘어 감정까지 섞인 대결을 벌여온 이들은 서로를 쉽게 믿지 못한다. 여자팀은 심지어 중앙 쉘터에서 함께 지내더라도 마지막에는 무조건 여자팀으로만 뭉쳐 기존 쉘터를 선택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한 번 어긋난 갈등과 금이 간 신뢰는 소통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쉽게 봉합되기 어렵다는 걸 '생존남녀'는 보여준다.
◆날것의 서바이벌 예능+남녀실험
'생존남녀'는 '와썹맨', '빨대퀸' 등을 통해 트렌디한 코드와 날것의 재미를 전해온 카카오엔터 이건영PD와 '가짜사나이', '머니게임', '파이트 클럽' 같은 서바이벌 예능을 만든 3Y코퍼레이션 배철순CP가 공동 연출을 맡은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날것의 치열한 대결이 펼쳐지는 웹예능에 최적화된 프로그램. 하지만 '생존남녀'가 전작에 비해 주목되는 건 서바이벌 예능이라는 틀을 가져오면서 그걸 통해 우리네 사회 현실 같은 것들을 은유하거나 실험하는 메시지가 강화됐다는 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 같은 서바이벌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글로벌 열풍으로까지 이어진 건 생존 게임이 갖는 재미요소만이 아니라, 그것이 보여주는 자본화된 세상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은유 같은 메시지가 폭넓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생존남녀'는 이제 서바이벌 예능 같은 콘텐츠에서도 어떤 기획적인 접근을 통해 충분히 현실적인 메시지들을 담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사회학에서는 인간의 행동양식을 분석하기 위해 특정한 공간에서 특정한 룰을 부여하는 실험을 하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는 이런 실험이 과연 윤리적으로 타당한가 하는 의구심이 담기기도 하지만, 그런 정도가 아니라면 그저 재미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끝날 수 있는 서바이벌 예능에서도 이런 기획적 포인트는 충분히 고려해볼만 하지 않을까 싶다. 남녀는 과연 무엇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생존남녀'가 기존 서바이벌 예능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건 바로 이런 차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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