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입력 2022-04-27 18:41:05 수정 2022-04-27 18:53:08

최경철 세종취재본부장
최경철 세종취재본부장

여기저기서 비슷한 풍경이 일제히 펼쳐지고 있다. 중앙 부처가 밀집한 세종 관가에서는 각 부처 장관들이 출입기자들과 잇따라 송별 간담회를 열고 있고, 청와대에서도 지난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출입기자단과 마지막 만남을 갖고 석별의 정을 나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청와대를 떠나는 일시를 다음 달 9일 오후 6시로 정했음을 알려주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말기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청와대를 출입하며 현직 대통령의 탄핵·파면이라는 충격적 장면을, 그리고 2017년 5월 10일 새 대통령으로서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문 대통령의 모습도 기자는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온 첫날 춘추관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총리·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인사 발표를 직접 했다. 비서관이 건네주는 자료가 아니라 문 대통령 본인이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낸 뒤 자료를 들고 직접 설명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참모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로 대화를 더 많이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터폰 대통령'으로 불렸던 전임자와의 차별화 시도로 읽혔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 출입기자들에게 "청와대를 떠나 광화문으로 나가겠다는 공약도 정말 실천하겠다"고 약속하며 소통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대선 공약 이행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소통의 문(門)을 열겠다고 다짐했던 문 대통령의 문은 시간이 가면서 자꾸만 자물쇠로 채워져 갔고, 불통 논란은 임기 내내 이어졌다. 청와대를 떠나겠다는 약속은 공수표가 됐고, 퇴근길에 국민들과 맥주 한잔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던 선언도 헛말이 되고 말았다.

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안긴 '실망 정치 시리즈'를 또다시 길게 열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국민들은 문 대통령의 집권 5년을 총체적으로 살핀 끝에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을 뽑음으로써 집권 세력을 심판했다. 지난 3월에 이뤄진 국민의 선택이 문재인 정부의 최종 성적표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25일 출입기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저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의 공과 과가 있다"고 했다. 적폐 청산을 주도하며 전 정권과의 극명한 차별화를 시도했다고 평가받는 문 대통령이 결국 임기 말에는 계승과 발전을 강조한 것이다.

계승과 발전은 없고 철저한 단절을 통해 새 역사만 내세우는 우리나라 정치문화에서 문 대통령은 이제 떠나지만 문 대통령 언급처럼 반드시 계승해야 할 가치는 분명히 존재할 터. 헌법 제정 이후 거의 손보지 못했던 지방자치 영역의 전면적 개조를 담은 헌법 개정안을 문 대통령이 2018년 3월 발의했던 것이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계승 가치라고 기자는 본다.

비록 여야 대립 국면 속에 헌법 개정안은 폐기되고 말았지만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을 촉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이 헌법 개정안에 대해 아직도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조항을 넣은 것을 비롯해 지방자치에 대한 조항이 빈약하기 그지없는 현행 헌법과 크게 차별화됐다. '지방정부의 자치권은 주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을 둠으로써 자치권을 헌법상 권리로도 명확히 했다.

어느 시인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면서 세월에 대해 노래했다. 기자는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고쳐 보고 싶다. 문 대통령은 이제 세월을 뒤로하고 가지만 그가 남겨 놓은 옛날 중 지방분권형 개헌안은 자치·분권 정부를 지향하는 새 정부가 꼭 한 번 되새겨 보길 소망한다. 옛날 없는 오늘과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