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조용한 시위

입력 2022-04-20 20:34:15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러시아에서 '조용한 시위'가 퍼지고 있다고 한다. 부차 학살 등 우크라이나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 자국 내에서 알려지지 않고 있어서다. 보도 통제 탓이다. 보도되지 않으니 시민들이 나선다. 여론만으로 없는 사실을 만들진 못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여론을 만든다. 그렇게 형성된 여론은 단단하다.

루블화 지폐에 '전쟁 반대' '지금 전쟁이 났어' 등을 쓴다. 대학생들은 전쟁 반대 스티커를 가방에 붙인다. 학살 관련 동영상으로 연결되는 QR코드 인쇄 전단도 대학가에서 발견된다.

이들이 조용한 시위를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반전 유인물을 붙이면 경찰에 두들겨 맞거나 체포된다. 정부가 설치한 특별 수용시설은 이미 만원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도 '조용한 시위'가 일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나흘만 참자던 상하이 봉쇄가 스무 날 넘게 이어진 탓이다. 제한된 식료품, 생필품 등을 구하다 급기야 민심이 폭발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정부 당국을 성토하는 사이버 시위가 시작된 것이다. 정부 당국을 조롱하는 은어를 올린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정부 당국을 압박한다.

중국의 엄격한 검열과 통제를 감안하면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에서 통용된다는 '상유정책 하유대책'(上有政策 下有對策)이란 말이 들어맞는다. 정부 당국이 정책을 만들면 아래에서는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다.

최근 들어 메타버스 시대가 열리자 새로운 시위 방식이 등장했다. 지난달 IT기업 웹젠의 노조는 임금협상이 결렬된 뒤 집회를 열었다.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연 아바타 집회였다. 이들은 회사 사옥과 주변을 그대로 구현하고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적은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귀엽고 신선해 세간에 화제가 됐다. 효율적인 메시지 전달이 시위의 목적이라는 점에서 효과 만점이었다.

대구의 한 관공서 앞에서 일군(一群)의 시위대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달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근 학생들이 같은 노래가 귓가에 계속 맴도는 '후크송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온종일 노래를 틀어둠에도 음량이 75㏈ 이하라면 합법의 영역이라고 한다. 정말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