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탈(脫)‘핀란드화’

입력 2022-04-19 20:02:57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핀란드는 100년간의 러시아 식민 지배를 거쳐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틈타 독립국가가 됐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 소련과 두 차례 전쟁에서 모두 패해 비옥한 농경지와 주요 공업지역 등이 포함된 국토의 12%를 소련에 넘겨야 했다. 이어 1948년에는 '우호협력원조조약'을 체결했다. 소련을 위협하는 어느 국가에도 자국 영토를 제공하지 않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가입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대신 소련은 핀란드의 정치적 독립과 자율성을 보장했다.

여기서 나온 신조어(新造語)가 '핀란드화'(Finlandization)이다. 강대국과 인접한 약소국이 강대국에 자국의 이익을 내주며 생존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경멸의 뜻을 담고 있는 이 용어는 1953년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칼 그루버가 대(對)소련 외교를 핀란드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처음 사용했다. 그 뒤 서독의 보수 정치인 요제프 스트라우스 등이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핀란드의 대소련 굴욕정책에 빗대 비판하면서 국제정치 용어로 일반화됐다.

핀란드화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 방안으로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서방과 교류할 수 있도록 독립적 지위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도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침공 때 같은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핀란드가 핀란드화에서 탈피하고 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강제 합병에서 러시아발 안보 위기를 절감하고 그해 10월 미국과 방위 협정을 체결했고, 2017년에는 한국산 K-9 자주포를 무려 49문(1천915억 원)을 수입한 데 이어 2021년부터 2022년까지 10문을 더 구매하기로 했다. 핀란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토 가입까지 서두르고 있다. 여기에 중립국인 스웨덴도 합류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반작용이다.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이 성사되면 나토 동맹국과 러시아 국경 길이는 두 배 이상 늘어나 방어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이 엄청난 전략적 실수로 평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