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큐레이터 활동 20여 년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
미술은 경험 속 감각 일깨워
느낌 나누는 ‘감성 생태’ 추구”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소장은 지역 미술계에서 손꼽히는 기획자이자 평론가다. 1996년부터 2017년까지 20여 년간 독립큐레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해왔고, 2009년부터는 전시기획자 정명주 대표와 함께 전시공간인 '아트스페이스 펄'과 현대미술연구소를 운영하며 예술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7일, 대구 중구 남산동 자동차부속골목에 자리한 아트스페이스 펄에서 그를 만났다.
▶1990년대, 일찍이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해왔다.
- 영남대에서 미학미술학 석박사를 전공한 뒤 대학에서 미학 강의를 해왔는데, 이론을 위한 이론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느낌이랄까.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획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1997년 '드로잉의 언어와 소통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첫 전시를 열었다. 이른바, 작품 감상과 이론을 함께 곁들인 드로잉 전시회였다. 작품을 감상한 뒤 '드로잉의 언어와 역사', '작품 설명과 현장 비평'을 듣고, 작가의 즉석 드로잉 작업 시연과 관객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반응이 좋았다.
이런 기록들이 모두 포스트갤러리(postgallery.co.kr) 사이트에 남아있다. 내가 1990년대 최초로 개설한 '현대미술전문인터넷화랑'이다. 1997년부터 독립기획과 평론을 온라인 공간에 아카이빙해왔고, 2006년에는 온라인 상에 소마 컨디션(Soma Condition) 전시를 오픈해 당시 "내 방이 화랑으로 변한다"라는 이슈를 만들기도 했다.
소속되지 않은 큐레이터다보니, 다양한 시도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독립큐레이터는 운신의 폭이 좁을 수 있지만, 그만큼 자신의 색을 뚜렷하게 가질 수 있다. 또한 말 그대로 독립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기에 오히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다른 것에 휘둘리지 않고, 빠르게 새로운 방향성을 갖고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전시는.
- 2013년 대구미술관의 외부기획자 첫 초청 전시를 맡았다. 주제는 '몸의 현재(Being Here)'. 미술관 2층 전체의 전시공간을 머리 등 몸으로 해석해 전시를 펼쳤다. 또한 작가들의 작업과정, 작품에 대한 인터뷰 영상을 함께 전시했다.
무엇보다 이 전시는 몸에 대한 내 철학을 녹여냈기에 기억에 남는다. 살아있는 몸은 현재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결합해가는 시공간의 장소다. 과거와 미래를 품으면서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현재를 얘기하고자 했다.
미술은 과거의 기록이 고착화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고착화하면 갇히기 쉽고, 부러지기 쉽다. 전시 기획을 할 땐 작가와 작품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봐야한다. 그것들은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느낌이 끊임없이 겹쳐진다. 시야를 넓히려면 공부를 엄청나게 많이 해야한다.
▶전시 철학은.
- 기본적으로 토론, 비평을 좋아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나 어떤 것에 대한 상상, 언어에 대한 고찰 등 주제는 무한대로 다양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적극적인 비평은 큐레이팅, 기획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죽은 비평의 사회'다. 평론가와 기획자, 이론가, 작가들이 각자 포지션에서의 역할만 할 뿐,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며 깊이 빠져드는 행위가 사라진 시스템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에 고착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는 것,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감성 생태(Eco Sensibility)'다.
이 감성 생태를 일깨우는 것은 미술이다. 거대화된 자본과 끊임없는 소비로 오염된 시대에, 미술 작품은 우리의 경험 속 오감, 육감, 칠감을 깨운다. 일단 작품을 먼저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은 곧 나의 심리를 꿰뚫어볼 수 있는 거울이다. 내가 그림을 보는 동시에 그림도 나를 보는 셈이다.
이렇게 각자가 느낀 감성의 울림들을 서로 대화에 녹여내고 피드백하며 성장하는 것이 감성 생태다. 감성 생태는 경쟁을 부추기고 계층간 우위를 점하게 하는 시스템을 타파하고 상대에게 박수쳐줄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아트스페이스 펄을 10년 넘게 운영해왔고, 새로운 10년의 3분의 1쯤 왔다.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나.
- 아직도 안망하고 하고 있네, 농담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팔리는 그림을 다루는 미술시장과는 조금 다른 작업을 해왔다. 유명하지 않고, 집에 걸어놓을만큼 상식적이지 않은 작품도 다뤄왔다. 그러다 지난해 제주아트페어에 무료로 초청 받아 참가했는데, 3점을 팔고 호평 받았다.
이에 힘입어 올해 6월 부산아트페어, 8월 제주아트페어에 계속 참여하려 한다. 앞으로 코로나가 완화되면 프랑스 등 해외아트페어에도 진출해볼 계획이다. 기존 아트페어와 차별화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싶은데, 우리만의 색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
또한 대구에 없는 미술 관련 학회도 만들고 싶다. 창작자와 이론가, 기획자들이 모여 피드백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연구하는 모임이 될 것이다. 이렇게 자유로운 결합, 연구를 추구하다보니 그동안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활동해온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미술연구소는 어떤 부분을 주로 연구하나.
- 고착화되지 않은, '변화'와 '유기적인 것들'을 연구한다. 온라인 세미나, 라운드 테이블을 열고 포스트코로나 시대 미술생태의 미래에 대해 토론한다. NFT, 메타버스 등 새로운 변화에 대한 토론도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일회성에 그치는 토론이 아니라 유튜브 채널에 아카이빙해오고 있다.
특히 연구소를 운영하며, 어떻게 감각의 주파수를 동시대성에 맞춰야할지 고민한다. 지금은 코로나19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지역에 머물러있지만, 이 공간에서도 끊임없이 베니스 비엔날레 등 세계적 프로젝트를 서치해보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며 입체적으로 생각한다.
▶30여 년간 지켜봐온 대구의 미술 현장에 대한 생각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은.
- 독(毒)과 약(藥)이 같이 있는 듯하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예술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바뀌었다. 미술시장이 호황을 맞고 너무 커지면서, 오히려 시장이 미술을 잠식하고, 미술이 미술을 죽이게 되는 행태도 생겨났다. 너무 빠르게 변화하다보니 시스템이 의지나 방향, 생각 없이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앞으로 지역 미술계가 제대로 가려면, 지원 기관들이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나아가야한다. 시스템에 종속돼 흘러가기만 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전체적인 비전 없이 그때그때 주제나 예산에 맞게 프로그램을 짜기도 한다. 전시와 별개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방향성을 좀 더 면밀하게, 자체적이고 정기적인 연구·발표를 통해 수립해나갈 필요가 있다. 단기·중장기적 비전과 사명감을 더욱 보여줘야 한다.
작가들 또한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 테크닉만 뛰어나다고 좋은 화가가 아니다. 예술인들이 스스로 예술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자존감을 회복해야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삶 속의 예술이 돼야한다. 예술가로서의 성장이란 무엇인지, 그를 위해 뭘 해야할지,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 끝에 체화하고 나의 언어로 표현해야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 팬데믹 발생 2년이 넘어서는 지점에서 고민이 많다. 팬데믹으로 예술현장의 환경이 완전히 변했다. 새로운 소통 방식을 찾아 온라인 미디어 세상으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온라인 아트플랫폼에 대한 연구를 해보고싶다. 메타버스 갤러리 등에서 전시하고 아트상품을 판매하며,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내가 추구하는 감성 생태를 어떻게 온라인 상에 녹여낼 것인가가 내게 큰 계획이자 중요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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