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그가 던진 질문 2

입력 2022-04-12 11:45:05

전헌호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종교영성학과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종교영성학과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종교영성학과 교수

동남아시아 보르네오섬의 열대우림에는 오랑우탄이 산다. 그의 평화스러운 얼굴과 느릿한 몸짓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데에 별 불편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일 뿐, 실제 그의 삶은 치열하다.

비교적 구하기 쉬운 나뭇잎들은 하루종일 먹어대도 영양이 부족하다. 때문에 영양이 풍부한 열매를 먹어야 하는데, 이 열매를 찾는 일은 보물찾기와 다름 없다.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과 먹이싸움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넓은 보르네오 열대우림에 사는 오랑우탄의 수는 제한적이다. 게다가 많은 먹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열대우림의 80%를 농장으로 전환해버린 탓에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들어 멸종될 위험에 처해졌다.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 다시 지난 글로 돌아가보자. 공소(公所)에서 만난 그가 던진 질문이다. 오랑우탄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은 이 질문이 한두 숫자나 짧은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다.

지구의 현 인구는 80억 명에 이른다. 이 중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의 수는 대략 16억 명, 굶주림으로 죽는 사람은 연 2천만 명에 이른다.

20세기 초 지구촌 인구는 16억 명 정도였다. 이 무렵 우리나라 인구는 지금의 삼분의 일보다 적었는데도 굶주림이 심했다. 훨씬 거슬러올라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예수님 시대 지구촌 전체 인구는 대략 2억 5천만 명 정도였다고 하는데, 먹고사는 데에 고달픈 사람이 넉넉했던 사람보다 훨씬 더 많았다.

연중 따스하고 비가 잦은 보르네오에서도 오랑우탄이 먹을 만한 열매를 찾는 데에 애를 써야 하는데, 겨울 추위가 심한 지역은 오죽했을까. 생존은 언제나 힘에 겨운 일이고 먹거리 찾기는 보물찾기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인류는 생존을 이어와서 오늘날 80억 명으로 늘어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달리고 있다. 인간에게는 멸종위기에 처한 오랑우탄과는 달리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오랑우탄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감성과 이성, 영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사랑으로 약자를 보호할 줄 알고, 고정된 지구촌에서 번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날 80억 명이 살면서 20세기 초의 전체인구 만큼의 수가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원자재 부족현상과 환경오염이 심각하게 진행돼 여러 가지 문제가 점점 커져만 간다는 사실과 온난화의 심각성도 알고 있다. 그동안 자유무역으로 번영을 꿈꾸어온 국가들이 이젠 슬슬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며 보호무역과 새로운 냉전으로 돌아서는 것도 보고 있다.

인류가 지구에서 생존하기 시작한 이래로 굶주림이 없었던 시절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것을 극복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우리 각자가 좀 더 합리적이고 현명한 이성과 영성으로 무장해 보다 나은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약자를 보호하면서 고정된 지구가 제공하는 조건에 어울리는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반드시 찾아올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을 의연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삶과 죽음이 참으로 무엇인지, 죽음 이후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믿음의 세계를 동원한 어떤 중대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