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의 '공기업 사장 알박기 반대 운동'을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로비로 무력화했다는 가담항설(街談巷說)이 사실로 드러났다. 한수원이 시민대책위에 입김을 넣어 성명서 발표 등을 무산시켰다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에 적극 나섰던 전력(前歷)이 있던 사장의 연임 시도에 나섰던 건 낯부끄러운 작태였다. 치졸한 로비까지 벌였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지역민들을 얼마나 어수룩하게 봤는지 분노가 치민다.
한수원의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현재도 전력보조기기 경쟁 입찰 중 일부 계약에서 나타난 업체 간 담합 의혹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 상생 구호를 가볍게 뭉갰다. 2016년 경주로 본사를 옮겼지만 수백 개의 핵심 협력업체 중 이전한 곳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동안 얼마나 지역과 유대가 없었으면 지역민들이 사장 연임을 적극 반대하고 나섰겠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지역사회를 안하무인 격으로 백안시한 결과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또 하나 실망스러운 것은 시민대책위의 자세다. 전직 한수원 사외이사가 위원장으로 시민대책위의 종합 의견을 묵살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시민대책위 37명에게 일일이 연락했다는 한수원의 로비와 같은 궤에 올라 있어서다. 시민을 대표하겠다고 나섰다면 그에 응당한 도덕성을 겸비해야 마땅하다. 시민단체를 시민들이 지지하고 권력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덕분이다.
한수원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경주로 본사를 옮긴 공기업이다. 어떤 기업이든 성장을 위해 가장 우선해야 될 것은 공생이다. 지역과 함께 간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서울의 집으로 가기 바쁘면 더 이야기할 것도 없다. 한수원이 과연 지역에 기반한 기업이 맞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경주와 상생을 다짐하고 실행하려 했다면 무마해 보겠다는 심산으로 접근할 게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면 설명하고 지역민을 설득하려 나서야 한다. 적당히 몇몇을 달래면 될 것으로 알았다면 심각한 오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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