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박점순(학동댁), 이필선(윤동댁) 씨의 마을 친구 고 유지란(송정댁) 씨

입력 2022-04-10 14:12:12 수정 2022-04-11 15:03:05

20세 안팎에 같은 동네 시집와 부모·친척보다 오래 얼굴 보며 60년 가까이 동무 됐죠
몇 시간 전만 해도 같이 웃었는데 음주운전 차에 치어…날벼락도 이런 날벼락 없었소

산에서 꺾어온 진달래와 함께 사진을 찍은 유지란 씨. 마을 주민 제공.
산에서 꺾어온 진달래와 함께 사진을 찍은 유지란 씨. 마을 주민 제공.

송정댁, 그대가 마을을 떠나간 지가 벌써 4년째구려. 우리 마을에서 함께 글 깨치면서 재미있게 놀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살아있는 우리는 벌써 나이 앞 자리에 '8'자를 달았소.

우리 세 사람, 20살 안팎의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칠곡군 지천면 신4리에 시집와서 부모친척보다 더 오래 얼굴보면서 힘든 일 있으면 서로 의지하고 살아오며 세상에 둘도 없는 동무가 됐지요. 젊을 때 마을 도처에 열려있던 사과며, 복숭아며, 참외 등을 주인들 몰래 한두 개씩 따먹고 했을 때 정말 재미있었지요. 그런 추억을 쌓으며 60년 가까이 지내면서 재미있는 일 많이 했던 게 요새 계속 생각납니다.

20년 전인가, 30년 전인가 그때는 마을에서 자전거를 같이 사서 빨간 조끼 맞춰 입고 성주대교로 창평못으로 여기저기 놀러가서 솥단지 걸어놓고 맛있는 거 해 먹으면서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소. 우리 세 사람이 정말 노래부르면서 놀기 좋아했었는데 특히 송정댁이 정말 흥이 많고 신나게 놀았더랬지요.

한글 배우기 시작할 때는 서로 얼마나 재미있게 살았는지, 글씨 쓴 모양새 보고 서로 놀리다가 선생님께 이르기도 하며 장난 많이 쳤지요. 송정댁이 한글 배우고 썼던 시도 기억나오. '나는 사남매를 두었는데 너는 삼십남매를 열었구나' 하면서 박을 여기저기 나눠준 일을 시로 썼었지요. 우리에게 글 가르쳐주시는 정우정 선생님이 "송정댁 어르신이 '동무들과 노래하고 공부하는게 제일 좋아. 그래서 일 주일 중에 화요일, 목요일만 기다려. 선생님이 나한테 비타민이야'라고 이야기하신 게 너무 기억에 남는다" 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자전거 타고 놀러갔을 때 찍은 단체사진. 맨 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가 윤동댁 이필선 씨, 두 번째가 송정댁 유지란 씨, 네 번째가 학동댁 박점순 씨. 마을 주민 제공.
마을 사람들과 자전거 타고 놀러갔을 때 찍은 단체사진. 맨 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가 윤동댁 이필선 씨, 두 번째가 송정댁 유지란 씨, 네 번째가 학동댁 박점순 씨. 마을 주민 제공.

송정댁 당신이 세상 떠난 날만 생각하면 우리 두 사람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 모두 가슴이 철렁한다오. 그날도 마을회관에서 같이 공부하고 노래부르고 놀다가 잘 헤어졌지요. 그런데 집에 도착하고 밖이 어둑해질 무렵에 갑자기 전화가 왔지요. "아이고, 송정댁이 마실 잠깐 나왔다가 돌아가셨답니다."라는 이웃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몇 시간 전만 해도 같이 웃고 떠들다 헤어졌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니…. 잠깐 마실 나온 사이에 음주운전한 차에 치어서 결국 세상 떴다 하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오. 나중에 사고 난 자리를 갔더니 당신이 쓰러졌던 자리 그대로 나락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한동안은 그 자리를 지나가기가 힘들었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소.

가끔 잘 때 되면 송정댁과 함께 여기저기 놀러다니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언젠가는 학동댁이 진달래를 한아름 꺾어와서는 물병에 꽂아놨었지요. 그 때 송정댁이 예쁘다며 같이 사진찍고 했었는데, 이제는 진달래 꺾어서 갖고 와도 같이 사진찍을 동무 한 사람이 사라졌구만요.

그래서 그런가 송정댁 떠나가고 나서는 노래 가사도 달리 들립디다. '찔레꽃' 노래를 2절까지 부르다보면 '작년 봄에 모여 앉아 찍은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라는 대목이 있지요. 이 구절만 나오면 같이 한글 배우던 마을 아낙네들이 송정댁 생각에 너도나도 먹먹해지곤 했었지요.

고된 농사일 하다가도 시간 나면 자전거타고 여기저기 유람 다니고, 한글 배우면서 시도 써 보고, 그러다가 노래 부르고 웃고 울고 했던 게 잘 때 되면 가끔씩 기억납니다. 동네에 시집와서 서로 의지하고 잘 살았는데 너무 빨리 갔소. 진달래도 피고 찔레꽃도 피는 봄이 되니 송정댁, 당신이 더욱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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