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봄이다! 벚꽃이다!

입력 2022-04-04 10:51:28 수정 2022-04-04 19:14:31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한국과 일본의 관용적 비교 표현을 연구하는 민성홍 박사는 두 나라의 보편적 의식의 차이를 사물에 대한 인식의 차이, 즉 연상되는 단어에서 찾은 적이 있다. "한국인의 보편적 의식으로 역사적 전쟁 영웅이라면 이순신, 이상적 여성상은 신사임당, 산이라면 금강산을 뽑을 것이다. 이것을 일본인의 의식 구도에 대조시키면 전쟁 영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여성은 그의 아내 요도키미, 산은 후지산." 여기서 하나 더 "봄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하면 우리는 진달래와 개나리, 일본은 벚꽃을 말할 것이다"라고 했다. 20년 전 대학원 수업에서 들은 이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난 것은 4월 햇살에 벚꽃이 무척 아름답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일본에서 생활했으며 그들의 문화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서 자랐다. 그렇다 보니 나의 미의식이 잘못 오해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벚꽃을 말하는 것 역시 조심스럽다. 벚꽃은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꽃이라면서 애국 시민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잘라낸 적이 있다. 애국국민운동대연합회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윤중로에서 벚꽃축제를 하는 것은 매국적 행위라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2014년의 일이니 오래전 일이라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벚꽃놀이는 문화 회유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통탄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하튼 우리 강산에서 벚꽃을 일본의 '사쿠라'가 아니라 '벚꽃'으로 그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벚꽃을 일본의 국화(國花)라고 아는데, 일본에는 특별히 국화가 없다. 그래도 벚꽃이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실상 국화' 역할을 하고 있다. 자위대와 경찰의 계급장이나 휘장은 벚꽃 문양이다. 100엔 주화에도 벚꽃이 그려져 있다. 학교나 회사의 합격 통지서에도 벚꽃이 그려져 있다. 올해 일본 대학 입시를 치른 제자 중,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컴퓨터 화면 가득 벚꽃이 그려지더니 "축하합니다!"라는 글이 올랐다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선생님이 찍어 주는 '참 잘했어요' 도장도 벚꽃 모양이다.

일본의 새 학기는 4월에 시작된다. 그러니 모든 일은 벚꽃이 만발한 지금 시작된다. 삼삼오오 벚꽃놀이를 즐기는데, 직장이나 가정이나 벚꽃을 핑계 삼아 단합 대회 하기 딱 좋은 때다. "벚나무 밑에서 술에 취해 노래하고, 나뭇가지 하나 꺾어 드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은 지금도 여전한데, 실은 14세기의 수필집 '쓰레즈레구사'에 나오는 글이다. 그러니 그들의 벚꽃 사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세에는 도쿠가와 막부의 명에 따라 전국 각지의 벚나무가 에도(지금의 도쿄)로 옮겨졌다. 에도 서민의 활기 넘치는 삶의 모습은 벚꽃놀이를 그대로 닮고 있지만, 일본인들은 만개한 벚꽃보다는 떨어지는 꽃잎 속에 더 많은 이미지를 담았다.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무사의 할복 장면은 흩날리는 벚꽃과 함께 기억된다. 18세기의 가부키 '가나데혼 주신구라'에서 이미 연출된 바 있는 할복 장면이다.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라는 조합이다. 꽃 중에서는 벚꽃이 가장 아름답고, 사람 중에서는 무사가 최고라는 거다. 순식간에 폈다가 순식간에 지는 벚꽃처럼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무사가 가장 훌륭하다고 풀이하는데, 옳은 말인지 아닌지 그건 개개인의 생각에 맡겨야겠다.

"햇살 가득 눈이 부시는 봄날, 벚꽃은 어찌 그리 서둘러서 지는가"는 천년도 더 된 시가집에 수록된 와카(和歌)다. "져야 할 때를 알아야 꽃도 꽃이고, 떠나야 할 때를 알아야 사람도 사람이다"는, 전국 난세 천하통일을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 죽음 앞의 한 여인이 읊은 와카이다.

벚꽃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고 4월을 가득 메우고 있다. SNS는 온통 벚꽃 사진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봄을 상징하는 꽃이 진달래, 개나리만이 아니라 벚꽃일 수 있겠다. 한국과 일본은 다른 역사를 가지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보편적 의식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인다. 그것만인가, 코로나19로 2년 이상 문을 닫고 있는 두 나라이지만 비슷한 날 같은 꽃을 피우니, 작은 꽃들의 재잘거림에 옅은 미소를 짓는 것은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