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되면 사퇴할 것" 법적으로 불가능한데도
"기자들 뭘 몰라" 욕설 섞어 비난한 지지자들
면박 기자회견 뒷받침한 건 극성 팬들 존재였다
"아직 시장도 안 됐는데 무슨 국회의원을 사퇴하라고 합니까. 그건 난센스죠."
홍준표 의원(대구 수성구을)이 언짢은 목소리로 일갈했다. 지난달 31일 대구 수성못 상화시비 앞에서 열린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에서다.
홍 의원의 출마로 보궐선거 가능성이 생겼고, 그의 의원직 사퇴 시점에 따라 선거 시점도 갈리는 상황이었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그런데 홍 의원은 "시장이 되면 사퇴하겠다"고 말했고, 여러 차례 추가 질문에도 같은 맥락으로 대답했다.
홍 의원의 발언은 주변을 당혹 스럽게했다.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너무나 태연하게 쏟아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의원 등 현직 선출직이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면 5월 2일까지는 사퇴해야 한다. 또 현직 선출직 공직자에겐 직을 사퇴해야 공천장을 주기로 한 국민의힘 방침과도 맞지 않았다.

그러나 수성못에 운집한 지지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오히려 "기자라는 게 뭐 그런 것도 모르느냐"고 고성을 질러댔다. "질문 수준 좀 봐라",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라며 욕설 섞은 비난을 가했다. 홍 의원은 만족스러운 듯 웃음지었다.
결국 뭘 몰랐던 건 홍 의원으로 밝혀졌다. 당일 저녁 홍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선과 착각해서 한 말이었다. 본선 후보가 되면 사퇴 시기를 검토하겠다는 답변으로 정정한다"고 해명했다.
이 답변을 제외하고도 홍 의원은 이날 회견에서 질문자에게 '면박'을 주는 답변을 쏟아냈다. 평소보다 공격적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대구시의 예산정책협의회에 지역 의원으로 유일하게 불참한 이유를 묻자 "있는 줄도 몰랐다. 자질구레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맞받았다.
대구시장 당선 시 연임 가능성을 묻자 "이번에 될 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그런 건 질문도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통합신공항 이전 이후 동구의 발전 방향을 묻는 질문에는 "회견문 다시 확인하고 오라"고 지적했다.
홍 의원 특유의 직설화법에는 나름대로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또 '사이비 기자'나 유튜버들이 괴상한 질문을 하는 데 진절머리를 내온 터라 조금은 통쾌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저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더 당혹스러웠던 건 회견장을 둘러싼 홍 의원의 지지자들이었다. 답변이 이어질 때마다 환호하며 질문자를 비난했다. 한 젊은 기자가 질문을 시작하자 큰 소리로 "아이고, 기자랍시고 어린 얼라가 나와가지고 저게 뭘 알겠노?"라고 외치기도 했다.

홍 의원의 '면박 기자회견'을 뒷받침해준 건 결국 그 지지자들 아니었을까. 사실도 아니고, 도리어 부메랑으로 날아올 발언임에도 그렇듯 자신있게 쏟아냈던 건 무슨 말을 하든 환호해주는 팬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세등등하게 법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로 몰아붙이던 홍 의원, 그리고 욕설을 퍼붓던 지지자들의 모습에서 얼핏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스쳤다. '문파'로 상징되는 극성 지지층에 둘러싸여 '문자 폭탄'을 '양념'이라고 추켜세우던 모습이 홍 의원에 오버랩됐다.
상대 진영이나 경쟁자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 혐오를 양산하고, 무비판적 지지로 정치를 퇴행시키는 이른바 '팬덤 정치'가 정치권을 지배한지는 꽤 됐다. 그런데 그렇게 팬덤에 기댔다 불행해진 정치인들도 셀 수 없다는 점에서 대구시장 유력 후보로 손꼽히는 홍 의원의 기자회견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대구시장 후보로서 홍 의원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만약 그가 시장이 된다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시정이 이날 회견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길 바라고 싶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