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말쯤 필자는 2·28과 관련된 4·19혁명의 자료를 찾기 위해 1만여 페이지가 넘는 여덟 권짜리 '4월 혁명 사료총집'을 뒤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를 원망하며 졸음을 참으며 자료집을 뒤지던 중 잠이 확 깨는 느낌과 함께 한 장의 영문 자료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매카나기 보고서'이다. 월터 패트릭 매카나기(Walter Patrick McConaughy, 1908~2000)는 미국의 직업 외교관으로 남미와 아시아 지역 전문가였으며 1960년 4·19혁명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다. 1960년 4월 26일 매카나기와의 면담 후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선언했다.
매카나기 대사는 2·28민주운동 직후인 1960년 3월 1일과 3일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의 상황을 미 국무부에 보고했는데, 그 보고서에 2·28학생시위에 대한 보고가 몇 줄 담겨 있었다.
필자는 지난 몇 년 동안 숨겨져 있는 2·28민주운동의 자료를 추적해 왔지만 미 국무부 문서에 2·28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었기에 그때부터 사흘 동안 전체 자료집을 뒤지기 시작했고, 1960년 3월 1일과 2일 작성된 미 8군의 일일 정보보고서에도 2·28민주운동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2·28의 주역으로 오랜 세월 2·28민주운동을 연구해 왔던 두 분에게 연락했다. "선생님, 제가 자료를 찾다가 2·28 직후에 매카나기 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2·28 관련 내용을 찾았는데 혹시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미국 문서? 처음 듣는데…." 두 분 다 금시초문이라는 대답이었다.
직감적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2·28 자료 중 가장 가치가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난 몇 년간 2·28민주운동과 관련한 영문 번역을 도맡아 온 경북대 영문학과 김노주 교수에게 연락했다. 김 교수는 흔쾌히 자신이 번역과 분석을 하겠다고 했다. 김 교수의 번역과 분석에 의해 새로운 사실 몇 가지도 드러났다.
그것은 2·28민주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잠재된 시위 동기에 대한 미국의 시각과 2·28 시위의 재발 및 타 지역으로의 확산에 대한 미국의 예측, 2·28학생시위 보도에 있어서 친정부 언론과 반정부 언론에 대한 미국의 관점 등이다.
이번에 발견된 매카나기 보고서와 미 8군 일일 정보보고서는 그동안 4·19혁명 자료로 분류되어 있었고, 영어로 된 자료인 데다 문서 중 몇 줄만 2·28 관련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발견되지 못했던 것 같다. 운 좋게 필자에게 발견되었고,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있어서 앞으로 귀한 2·28민주운동 연구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60여 년 전 세계지도에서 찾지도 못할 정도이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지방 도시 대구에서 한 줄기 섬광 같은 학생 시위가 있었고, 그 역사적 의미를 놓치지 않고 단 몇 줄이라도 기록으로 남긴 매카나기의 외교관으로서의 예민한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그의 보고서가 재발견되어 2·28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알게 해 준 월터 패트릭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에게 감사드린다.
백재호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기획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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