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나 훌라 대표
흔히들 연인과의 이별 과정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잊히지 않는 그의 체취라고 한다. 그의 기억을 지우고 지워도 끝끝내 지워지지 않는, 다시금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의 냄새다. 길을 가다 익숙한 향수 냄새에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고 눈물을 흘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클리셰'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 그 홍차와 마들렌의 이야기도 사실은 미각이 아니라 후각에서 출발한다. 주인공이 학교에서 돌아와 추워하는 걸 보고 어머니가 따뜻한 홍차를 준다. '프티트 마들렌'이라는 과자를 녹인 홍차였는데, 한 숟갈 떠먹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유년 시절과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이 구름처럼 피어오른 것이다.
그 맛과 냄새에 감춰져 있던 기억에는 유년 시절과 콩브레, 그때 만났던 사람들의 행복한 기억이 덩굴째 매달려 있었다. 그 기억은 오랫동안 거의 죽은 채로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끈질기게 세월을 견디다가 마들렌 홍차로 코와 혀가 자극되는 순간 갑자기 생생하게 살아난 것이다. 그는 이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과정을 작가는 4천여 페이지에 이르는 기억의 파노라마로 풀어냈다. 이는 '프루스트 효과'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냄새가 뇌에 저장된 기억을 일깨우는 데 효과적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실제로 냄새는 오랜 기억도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는 강력한 매개체이다. 개나 고양이를 떠올려 보면, 그들은 깨어 있는 동안 늘 코가 촉촉하다. 그들이 가장 신뢰하는 감각은 이성적인 시각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코'다. 그들은 '코'로 세상의 모든 것과 관계를 맺는다. 반면 인간은 문명화(특히 근대화) 이후로 시각에 의존한 역사를 그려 왔다. 사물을 유형으로 나누려고 하는 '분류'와 '위계'의 강박으로 '이성의 세계'를 구축해 왔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초가 '기억하는 능력'이라고 보고, 그 기억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이 구축되고 사회의 관계망과 의미망을 형성하는 것이라 본다면, 그동안 감각의 군주로 군림해 온 시각의 권력에서 탈피해 후각의 영토, 즉 냄새에 대해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냄새와 기억의 상관관계는 과학적으로도 상당 부분 밝혀진 바 있다. 우리가 냄새를 맡을 때 코 안에 있는 후구 사구체 속 세포에서는 냄새의 정보를 수집한다. 하지만 냄새는 단 하나의 사구체로 정의할 수 없다. 사구체에서 후각 피질까지 연결점이 모두 뒤섞이고,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뇌의 일부인 편도체와 해마에서 생성된 정보와 결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냄새가 강력한 몽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몇 년 전인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 속에서 울다 지쳐 다시 눈물에 익사할 즈음, 먹먹해진 코 사이로 스며들어온 그 냄새를 떠올려본다. 친구가 부엌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던 그 냄새가 문틈을 지나 이불의 두께를 뚫고 코 속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이불 밖으로 나갈 힘을 얻었다.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웠던, 감정의 올무에서 나를 구출했던 그 냄새는, 시간을 거슬러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의 장소로 나를 이끄는 손잡이였고, 나는 그를 따라 마침내 현재의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작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을 뛰어넘는 힘은 결국 기억을 뛰어넘는 힘이었고, 그때 나에게 말을 건 친구의 요리 냄새는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냄새는 기억과 감정의 언어라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지금 이 시절은 어떤 냄새로 기억될까. 언젠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듯한 그런 때에, 서로를 일으켜 줄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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