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큐레이터다] <6> 이남미 경북대미술관 큐레이터

입력 2022-03-22 10:46:11 수정 2022-03-22 19:37:57

“지역사회 밀착 전시 이어나가고파…
미술관, 편하게 찾는 만남의 장소이길”

'프레데릭 벅스, 말의 머리'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경북대 미술관에서 이남미 큐레이터가 활짝 웃어보이고 있다. 이연정 기자

지난 17일 경북대 미술관에서는 '프레데릭 벅스, 말의 머리' 사진전이 한창이었다. 사무실에서 전시장을 비추는 CCTV를 보던 이남미 큐레이터는 "가끔 한두시간씩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관람객들이 있다"며 "그럴땐 나도 모니터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관람객들이 어떤 생각을 할 지 상상해보며 작품을 보는 기쁨을 함께 누린다"고 웃으며 말했다.

▶큐레이터를 꿈꾸게 된 이유는.

-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사실 큐레이터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았던 때다. 경북대 미대에 진학해 작가의 꿈을 키워오다가 어느날 문득 작품은 그것을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객과 작가 사이에서 소통하고 연결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경북대에서 석·박사까지 수료한 2006년쯤 경북대 미술관이 개관했다. 첫 학예사로 들어와 일한지 16년째다. 모교다보니 더욱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것 같다.

▶전시 기획 시 중점을 두는 부분은.

- 학생들의 전시나 외부 대관 등으로 목적성을 잃은 미술관들이 더러 있다. 우리는 지역 사회에 문을 활짝 열고, 다양한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에 중점을 둔다. 사실 학교에서는 미술관 개관 당시 운영에 대해 우려가 많았지만,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운영하다보니 잘해오고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교육기관으로 교육적 측면을 고려하는 것도 공공미술관과 차별화하는 점이다. 대학은 여러 학문의 집합체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분야를 흡수하려고 노력한다. 자문을 얻을 전문가들이 학교에 포진해 있고, 자료 등 대학 자원을 십분 활용할 시스템이 잘 갖춰져있다. 그동안 패션, 건축, 책, 독립영화 등 여러 전시 주제를 거쳐왔다. 앞으로도 미술 전시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려 한다.

▶지난해 지역민을 위한 미술치료를 진행한 점이 눈에 띄었다.

- 코로나19로 인해 미술관에 발걸음이 끊긴 시기였다. 코로나로 인해 소외된 이들을 직접 찾아나서자는 생각에 학생들과 함께 복지센터 등을 찾아 참여자들을 섭외했다.

노인과 발달장애인, 그들의 가족이 미술치료의 대상이었다. 지속적으로 바깥에 나가고 소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고통과 우울함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미술치료를 하는 동안 서로 만나 얘기하고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사실 코로나가 숙지지 않던 시기라 걱정이 많이 됐지만 무사히 잘 마쳤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코로나로 전시를 멈추고 미술관이 비어있을 때라 진행할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시도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여력이 된다면 미술관에서 또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 지역의 소외계층에 먼저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미술관이 거창한 게 아니라, 지역민들이 편안하게 만나는 장소였으면 한다.

'프레데릭 벅스, 말의 머리'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경북대 미술관에서 이남미 큐레이터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앞으로 기획해보고싶은 전시는.

- 지난해 '산격3동 6통1반'이라는 전시를 진행했다. 연암 서당골, 복현 피란민촌, 경북대 혁신타운 등 경북대 인근에서 진행 중인 도시재생 사업을 현장중심으로 소개하고, 주민들이 들려주는 뒷이야기 등을 정리했다. 기존 도시재생 사업들은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정리돼있지 않다. 그렇다보니 주민들이 전시를 보고 무척 좋아했다.

전시를 끝내고나니, 크지 않아도 좀 더 지역사회와 밀착되는, 사람들과 직접 연결되는 전시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은 결국 사람들이 찾아와야 한다. 다양한 지역사회 계층을 수용하면서, 그들이 직접 느끼고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늘려가고 싶다. 지역사회와 활발하게 소통하는 것도 대학 미술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큐레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고상해 보이지만, 굉장히 치열하고 강도가 센 직업이다. 사명감을 갖고 정말 이 일을 좋아해야 해나갈 수 있다.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람있고 매력있는 일임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 매력을 알기까지 힘들지만, 그것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만족감도 크다.

일례로, 전시기간 중 미술관 오픈시간 이전에 문 앞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분을 봤을 때 무척 감동을 받았다. 먼 곳에서 오로지 이 전시를 보기 위해 오신 분이지 않나. 언제 그런 분들이 또 찾아올지 모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시에 미술관 오픈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앞으로의 계획은.

- '내 인생, 내 커리어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최근 한 적이 있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요구하는 것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이 변화하지 않으면 공간의 변화도 없기에, 스스로 고민과 연구를 거듭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바쁘게 미술관에서 일해왔다. 한번쯤 되돌아보고 정리하며, 부족한 점을 체크해보는 시간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러한 시간을 갖고난 뒤, 앞으로 이 길로 나아갈 후배들에게 내가 직접 이 일을 해보며 알게된 것들을 알려주고 싶고, 활동하는 장도 만들어주고 싶다. 현재 학생 인턴 등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스터디와 큐레이터십 프로그램도 앞으로 다양화하려 한다. 인재를 길러내는 데 소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