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일상 속으로 다가온 기후재난

입력 2022-03-17 19:18:21

장성현 사회부 차장
장성현 사회부 차장

'투두투두 투두투두….'

이른 아침 귓전을 때리는 헬기 모터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전쟁이라도 난 건가. 산허리 위로 구름처럼 무언가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다.

푸르른 늦겨울 하늘은 구름이 비빌 구석이 없다. 자세히 보니 연기다. 지난달 26일 발생한 대구 달성군 가창 산불의 서막이었다.

이틀 만에 꺼지는 듯했던 산불은 인근 산으로 옮겨 다시 기세를 올렸다. 매일 아침 연기가 피어오르는 산을 보며 출근하고, 퇴근 후 어둠 속에서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불구덩이를 보는 게 일상이 됐다.

마당에서는 하루 종일 장작 때는 냄새가 났다. 소방 헬기와 군용 헬기가 줄지어 날아가 물을 뿌린 뒤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뉴스 화면에서는 금강송 숲으로 맹렬하게 돌진하는 울진 산불 현장이 쉴 새 없이 흘러갔다.

거칠었던 산불은 보름이 지나서야 고개를 숙였다. 시커멓게 휘감던 연기는 사라졌지만 멀지 않은 산을 보며 느꼈던 화마의 강렬함은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보름 만에 진정된 가창 산불과 213시간 넘게 휘몰아친 울진·삼척 산불. 정부는 이번 산불 확산의 원인으로 5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겨울 가뭄을 꼽는다.

기상청의 '2021년 겨울철 기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대구의 강수량은 0.02㎜에 그쳤다.

경북도 안동과 영천의 강수량이 0.1㎜에 불과할 정도로 메마른 겨울을 보냈다. 전국의 평균 강수량도 13.3㎜로 평년(89.0㎜) 대비 14.7%에 머물렀다,

기후 변화와 함께 산불은 점점 빈번해지고 대형화되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0년 대구에서 발생한 산불은 16건으로 이전 10년 평균(7.4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해 경북의 산불은 106건으로 이전 10년 평균(79.2건)보다 33.8% 증가했다. 특히 경북의 산불 피해 면적은 2천52㏊로 이전 10년 평균(353.74㏊)보다 무려 5.8배 급증했다.

잦은 대형 산불은 범지구적인 상황이다. 2019년 호주 산불에 이어 2020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해 12개 주 200㎢에 달하는 임야를 태웠다.

터키와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에서도 대형 산불이 잇따랐고, 올 들어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도 역대급 산불을 겪고 있다.

기후 위기가 계속되는 한 산불은 더욱 대형화되고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산불이 최대 14%, 2050년까지 30%, 2100년까지 5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잦은 대형 산불은 대기 중에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지난 2020년 EU 가입 국가들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모두 2천600Mt이었지만, 이듬해 산불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무려 6천450Mt에 이른다.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기후 변화를 촉진하고, 가속화된 기온 상승과 끈질긴 가뭄은 다시 산림을 바싹 말려 산불에 취약한 환경을 조성한다. 산불과 기후 재난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는 셈이다.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는 쉽게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대형 산불에 대한 국가적인 대응 시스템은 만들 필요가 있다.

산불 진화 체계와 장비를 고도화하는 것은 물론, 숲의 생태계를 바꿔 산불에 강한 숲으로 바꿔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산불 발생 후에 훼손된 산림을 어떻게 복구하고 생태계를 복원할 것인지 관리 목표와 방식도 다시 세워야 한다.

기후 위기는 이제 일상 가까이에서 느끼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