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의 동물 사랑은 남다르다. 아동학대방지전국협회가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보다 훨씬 더 뒤에 생겼다는 것은 놀랍지만 사실이다. 공영방송(BBC)에서는 동물을 구조하고 연구하는 다큐멘터리를 자주 볼 수 있고, 길에서도 종종 야생동물보호협회의 활동을 만날 수 있다. 텔레비전 광고마다 온통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그들의 동물 사랑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영국에는 취미로 새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많고, 새 관찰용 망원경, 새 관찰기록노트, 새를 부르는 피리를 파는 가게도 있다. 강에는 오리와 백조가 있고, 사람들은 오리와 백조에게 빵을 던져준다. 가게 문밖에는 개를 위해 물그릇을 내놓고, 정원에는 새를 위해 모이통과 물을 준비해놓는다. 운이 좋으면 도시에서 여우를 볼 수도 있다. 근교에 살면서 먹이를 구하러 시내로 통근한다는 여우 이야기를 읽었는데, 나는 그 녀석을 런던의 친구 집 정원에서 만난 적이 있다.
시인 박 준은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나무와 풀을 키우는 일이었다.(<광장> 중에서)"라고 했는데, 어쩌면 영국인은 동물을 사랑하기 위해 자연을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마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듯 자연을 자연 그대로 보존한다. 광활한 초원과 푸른 언덕을 예전 모습 그대로 놔둔다. 집 가까이에 만들어 놓은 공원은 꾸미지 않아서 공원 같지가 않다. 정원은 자연을 닮게 가꾸고, 꽃은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꽃병에 꽂는다. 방충망이 없어 벌레들이 들락날락하는 집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며 산다.
영국인과 개와의 사이는 더욱 각별하다. 개에게 사람 대하듯 한다고 하지만, 그건 맞는 말이 아니다. 전에 말했듯이, 영국인은 비사교적이고 감정표현에 서툴러 처음 만난 사람과는 접촉을 피한다. 정식으로 소개받지 않으면 당황스러워한다. 개와는 처음 만나도 어색함이 온 데 간 데 없어진다. 쑥스러움도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심지어 초면에도 개와 동행한 사람과는 아무런 문제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개는 친구이자 가족이므로 마땅히 집안에서 같이 산다. 매일 함께 산책하고, 못할 때에는 돈을 주고서라도 산책을 시킨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마트 앞에서 혼자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개가 기특했다. 나무 아래에서 남자는 책을 읽고, 개가 곁에서 가만히 누워있는 모습은 평화로웠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느린 걸음으로 걷고, 앞서 걷는 개가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며 기다려주는데, 서로 오래도록 밀접하게 연결된 단짝 친구 같았다.
공원에서 고삐를 풀어준 개가 지나가는 개에게 관심을 보이며 쫄래쫄래 따라갈 듯했다. "안 돼"라는 주인의 말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주인과 눈을 맞추며, 그 자리에 서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 영국 개들은 혼자 제멋대로 돌아다니지 않고, 늘 주인 가까이에 머물며, 주인의 말을 경청한다. 영국에는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없고, 칭얼대거나 우는 아기가 없는데, 으르렁대거나 왕왕 짖는 개도 없다.
아트클래스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종이 위에 점만큼 작은 거미가 기어가는 것을 보고 친구 스텔라가 말했다. "이것 좀 봐. 정말 놀랍지 않아? 너무 작고 너무 아름다워."라는 말에서 그 티끌만한 존재가 결코 하찮지 않다는 그의 속뜻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라면 그냥 손가락으로 꾹 눌러버렸거나 입으로 바람을 불어 날려버렸을 거라고 생각하던 차라, 마치 잘못을 저지른 듯 뜨끔했다.
여럿이 그림을 그리고 점심을 먹었다. 다 같이 식탁을 정리하는데 글로리아가 정원에 나가 식탁보를 툴툴 털며 "We live together.(우린 같이 사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는 먼지를 터는 게 아니라, 새들 먹으라고 빵 부스러기를 터는 거였다. 그 말이 동물들이 하는 말 같기도 했다. 나는 요즘 거미를 보면 가만히 내버려둔다. 국물을 우려낸 멸치는 고양이에게 갖다 주고.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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