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삼척 산불] 화마에 동물들도 안타까운 죽음

입력 2022-03-08 16:12:35 수정 2022-03-08 21:47:24

대피소 들어가지 못해 길거리 배회하는 동물들
하수처리장 한켠에 임시 보호시설 마련…재난 시 동물보호 프로그램 절실

울진군 하수처리장 한켠에 마련된 임시 보호시설에서 동물권행동 카라의 봉사자들이 울진 산불 현장으로부터 구조한 반려동물들을 돌보고 있다.
울진군 하수처리장 한켠에 마련된 임시 보호시설에서 동물권행동 카라의 봉사자들이 울진 산불 현장으로부터 구조한 반려동물들을 돌보고 있다.

8일 오후 울진군에서는 조촐한 장례식이 열렸다. 5살 황소 '소원이'의 장례식이었다. 도살용 소로 자라 평생 식별번호로만 불려왔던 소원이는 이날 이름을 얻은 대신 한줌 차가운 땅에 묻혔다.

지난 4일 울진을 덮친 산불은 소원이의 축사로까지 손길을 미쳤다. 주인집마저 모두 불에타 잿더미가 된 그날. 소원이는 살기 위해 축사 울타리를 뛰어넘다가 뒷다리가 부러졌다.

연기를 잔뜩 마신 탓인지 연신 가래 섞인 숨을 뱉어내고 여기저기 화상자국이 가득했지만, 어차피 도살장에 끌려갈 몸이라 흔한 치료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다행히 소원이는 지난 7일 울진에 도착한 사회단체 '동물권행동 카라'의 눈에 띄어 항생제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소원이는 이틀 동안 사료를 전혀 먹지 못하며 하루가 지나고 끝내 숨을 거뒀다.

울진 산불로 인해 많은 동물들 역시 고통을 피하지 못했다. 울진군 북면의 한 민가 화재 현장에서 백구가 불에 그슬린 채 숨져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SNS 캡처
울진 산불로 인해 많은 동물들 역시 고통을 피하지 못했다. 울진군 북면의 한 민가 화재 현장에서 백구가 불에 그슬린 채 숨져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SNS 캡처

소원이의 안타까운 죽음 외에도 카라는 지난 7일에도 까맣게 탄 백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하얀색 개였지만, 워낙 심하게 그을린 탓에 털 전체가 황색으로 변해 주인도 선뜻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목줄은 끊겨 있었지만, 백구는 주인인 노부부의 집 앞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백구의 장례식은 7일 오후 11시쯤 노부부와 봉사자들의 배웅 속에서 치러졌다.

현행 지침상 반려동물은 대피소에 함께 들어오지 못한다. 산불이 코앞까지 들이닥친 급박한 상황 속에서 미처 동물들까지 챙기기는 더욱 어렵다.

때문에 울진지역에는 목줄을 단 강아지들과 불에 타 죽은 사육동물들이 수백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카라 측은 지난 7일 울진군에 요청해 하수처리장 한 쪽에 임시 보호시설을 만들었다. 건강이 위급하거나 너무 어린 새끼들은 울진의 한 동물병원의 도움을 받아 보호 중이다.

이렇게 보호되고 있는 동물들은 강아지만 80여 마리에 이른다. 대부분 목줄을 차고 있어 주인이 있는 반려동물일 가능성이 높다. 불길을 피해 도망가던 주인이 일부러 풀어줬거나 혼란 속에서 제 스스로 도망친 것일 터이다.

사태가 다소 진정되고 반려동물을 찾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대다수는 입양 외에는 방법이 없다. 여타 지역의 동물보호소로 이송되는 방법도 있지만, 일정 보호시기가 지난 동물들의 끝은 굳이 말할 나위가 없다.

반려동물 외에도 울진지역에서는 이번 산불로 산양 등을 비롯한 보호종과 각종 야생동물들이 변을 피하지 못했다. 낙석방지를 위해 산비탈 도로변에 설치한 그물망에 막혀 불에 타 죽은 동물들도 종종 눈에 띌 정도다.

카라 관계자는 "구호물품이 쏟아지고 있어도 동물들에게는 물티슈처럼 위생용품 하나 제대로 구비되지 않는 등 너무나 열악하다. 당연히 사람들의 피해가 중요하지만, 약자인 동물들의 위태로움도 결코 무시돼서는 안된다"면서 "화마의 피해 속에서 고통 받는 울진지역 동물들을 위해 입양 등 많은 관심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