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아카이브 사업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고(故) 이필동(1944~2008) 선생님 유족을 만나는 일이었다. 선생님은 생전에 연극인이자 연극사 연구자, 언론인, 예술행정가, 컬렉터 등으로 폭 넓게 활동하셨기에, 남기신 자료의 가치가 특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어렵게 찾아낸 자료들은 다양했다.
연극 서적들, 비디오테이프, 사과상자에 수북이 담겨 있는 팸플릿들, 신문 스크랩, 그리고 이름 모를 서류들까지…. 선생님은 그 시대의 아키비스트셨다. 선생님이 미처 자료에 대한 설명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기에 하나씩 유추해가며 정리해야했다.
'그 자료'도 우연히 발견됐다. 연극 팸플릿 상자들을 운송해온 후, 1차 분류를 위해 상자를 들추던 중 빛바랜 종이 한 장이 툭 떨어졌다. 3단으로 접어 만든 이 작은 종이를 펼친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혁명봉화 2.28 일주년 기념 학도 예술제' 안내장이었다. '혁명봉화 2.28'은 대구 2.28민주운동, 일주년 기념 학도 예술제는 선생님이 생전에 입버릇처럼 자신의 연극 인생의 출발점으로 말해오던 바로 그 행사 아니던가.
이 안내장은 손 글씨로 제작됐다. 표지에는 '혁명봉화 2.28 일주년 기념 학도 예술제'라는 제목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행진하는 삽화, '4294년 2월 27일, 28일. 낮2시, 밤 7시, 장소: 구 국립극장, 주최: 민족계몽협회, 2.28 혁명봉화기념회'라고 적혀있다. 내지에는 총 3부로 나누어 펼쳐진 행사 내용과 출연자 이름이 나와 있다. 대구고, 경북고, 원화여중, 대구여고, 경북여고, 대구농림고, 사대부고, 대륜고, 경북여고 등 여러 학교 학생들이 참여했다. 주필 낭독, 시 낭독, 무용, 연주, 독창 등으로 1부와 2부가 진행되고 제3부에 연극 <밀주>가 공연되었다.

뒷면에는 대회장, 사회, 그 외 진행과 정리, 안내를 맡은 사람들이 소개돼 있다. 마지막 장의 인사말은 이 행사의 취지를 잘 설명해준다. '다가오는 세대가 우리의 것이기 전에 우리들은 고귀한 기풍을 일으켜 살리는 일과 도덕을 재무장시키고 새로운 형태를 갖추어 온전한 인간으로서 고주한 기성인들에게 간곡한 충언과 함께 혁명봉화 2.28 일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본 예술제를 개최하는 바입니다. 이와 같은 혁명의 기질을 살리고 다시 한 번 더 마음의 뜻을 갖추는 의미에서 열과 성을 한데모아 작으나마 잔치를 마련했습니다.(후략) -회원 일동.'
이필동 선생님은 당시 경북고 재학생이었고, 연극 <밀주>에 출연했다. <밀주>는 극작가 차범석의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입선작이다. 1961년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필동 선생님은 저서 『새로 쓴 대구연극사』(2005)에 이 학도예술제가 펼쳐진 이틀 동안 관객이 1만 여 명이 다녀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이 안내장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대구시는 같은 행사의 포스터도 기증받을 수 있었다. 이 자료는 현재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 열린수장고에 전시되어 있다.

한편 이필동 선생님은 지역의 작은 신문사 편집주간으로도 활동하셨다. 그 신문은 1992년~1993년 사이 8개월가량 발행되고 폐간됐는데, 선생님은 당시 발행된 신문을 모두 보관해두셨다. 그 신문 자료들이 뜻밖의 기회에 활용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문옥주 할머니의 최초 육필수기가 기획연재로 수록된 것이다. 문옥주 할머니는 1991년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전국에서는 두 번째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한 분이다.
대구위안부역사관이 육필수기 1회 원고가 게재된 이 신문 창간호를 개인 소장가로부터 기증받았고, 추가 자료를 수소문하던 중 필자와 인연이 닿았다. 이 신문은 너무 짧은 기간만 발간되었기에 대학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 이필동 선생님의 신문 컬렉션 속에서 총 8회에 걸쳐 연재된 수기를 모두 찾을 수 있었다.
이 육필수기는 문옥주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등록 후, 최초로 밝힌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지난해 대구위안부역사관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이 모여 이 육필수기 강독회를 진행했다. 연구자들은 미리 수집되어 있던 문옥주 할머니의 생애와 관련된 연구 자료들과 함께 해제한 후, 기획전 자료로도 활용했다.
아카이브에 일찍 눈을 뜬 사람, 이필동 한 사람을 통해 우리는 2.28민주운동을,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새롭게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보물들을 얻었다. 아직 분석하지 못한 보물은 더더욱 많을 것이다. 우리는 이필동 선생님의 혜안에 빚이 생겼다. 그 빚을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 갚아야하기에 아카이브에 더욱 몰입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임언미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장, 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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