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경 영남신학대 기독교 영성학 교수
우리는 요즘 먹고 마시는 것, 음식 문화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인의 커피 소비량은 전 세계 평균의 2.7배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은 코로나19 여파로 수요가 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353잔, 즉 하루 한 잔 꼴이다. 커피 전문점 매출 규모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최근에는 에스프레소 원두도 선택해서 즐기는 맞춤형 고객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이제 마실 만큼 마셨는지, 더 스페셜한 커피를 찾고 있다.
음식에 대한 욕망은 커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시중에 쏟아지는 수많은 음식 관련 서적들이 음식 예찬과 미감의 탐험을 위한 안내서로 바뀌고 있다. 방송 또한 예능은 말할 것도 없고, 각양각색의 이름으로 제작된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다.
명언처럼 굳어진 '프렌치 파라독스'란 말도 음식의 쾌락에 기반해 나오지 않았는가. 이는 프랑스인들이 고지방을 많이 섭취하는데도 심장계통의 질환이 적고 건강하게 산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제 탐식은 더 이상 죄도, 부끄러움도 아니다. 탐식이 죄인 시대는 종말을 고했고, 미각적 쾌락은 인간이 누려야 할 최고의 선(善)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탐식과 미식이 같은 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구르망디즈(gourmandise)는 탐식, 미식, 식도락이라는 세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됐다. 한때 구르망디즈는 음식을 무조건 탐하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고, 심지어 탐식은 간음을 낳는 죄로 여길 정도로 부도덕한 단어였다. 그러나 점차 이 단어는 맛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즐긴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변화했다.
근대에 이르러 구르망디즈에서 착안한 용어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 단어는 위(胃)를 의미하는 가스트로(gastro)와 규칙을 의미하는 노모스(nomos)가 결합해 만들어졌다. 미식가를 지칭한 가스트로노미는 잘 먹는 기술과 방법으로 도를 벗어나지 않고, 절제하며 먹는다는 뜻이다.
음식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지만,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따라 그 선악이 달라진다. 문제는 도를 벗어난 무절제와 과잉에 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 프랑수와 라블레의 대표작 '가르강튀아'에 등장하는 핵심적 메시지는 과잉이었다. 그는 폭식, 폭음이라는 과잉이 역설적이게도 기독교 중세 세계에 만연한 부조리임을 폭로했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인간이 행하는 악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과잉이라고 했다. 과잉이 왜 악일까. 과잉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잉은 본질을 다르게 보이도록 치장하는 속성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과잉은 좋은 삶으로 인도하기보다는 우리를 쾌락으로 몰아넣는 거짓이자 악이라고 했다.
탐식을 인간의 내면적 삶과 관련해 처음 언급한 사람은 4세기 수도승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이다. 그는 인간을 내적으로 타락시키는 8가지 악덕을 열거하면서, 첫 번째 자리에 탐식을 놓았다. 그는 과잉이 낳을 심각한 결과를 우려했다.
우리는 탐욕과 과잉을 부추기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탐욕과 과잉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속삭이고 있다. 더 많이 먹고, 더 맛있는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 성공한 삶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탐식과 과잉이 진실한 삶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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