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여성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선 외할머니 자랑스럽죠”

입력 2022-02-23 17:00:00

김영주 전 계명전문대학 교수, 대구여성가족재단에 은패물 기증
전국 최초 여성 국채보상운동 조직 이끈 정경주 선생의 외손녀

전국 최초 국채보상운동 여성단체인 대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를 이끈 정경주 선생의 외손녀 김영주 전 계명전문대학 교수가 외할머니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대구여성가족재단 제공
전국 최초 국채보상운동 여성단체인 대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를 이끈 정경주 선생의 외손녀 김영주 전 계명전문대학 교수가 외할머니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대구여성가족재단 제공

"외갓집이 국채보상운동과 관련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저에게 특히나 다정하게 대해주셨던 외할머니가 이처럼 훌륭한 일을 하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2020년 9월 대구여성가족재단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영주(83) 전 계명전문대학(현 계명문화대) 교수가 자신이 전국 최초의 여성 국채보상운동 조직을 이끈 정경주의 외손녀라고 밝힌 것이다.

정경주는 전국에서 가장 처음 조직된 국채보상운동 여성단체인 대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중심 인물이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단순히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채보상운동에서 남자들이 여성을 논외로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전국 여성들이 떨쳐 일어날 것을 촉구했다. 이는 여성들이 전국 각지에서 28개 단체, 17개 준단체를 조직하며 적극적으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패물폐지부인회를 이끈 여성들은 그동안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정경주 역시 '서병규의 처 정 씨'로 기록돼왔을 뿐이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은 족보 등을 활용해 연구한 끝에 108년 만인 2015년 그들의 이름을 찾아냈다.

이후 이들의 이름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후손들을 통해 사진 자료 등도 입수할 수 있었다. 정경주의 외손녀인 김 전 교수도 그 중 한 명.

전국 최초로 여성 국채보상운동 조직을 이끈 정경주 선생의 외손녀 김영주 씨가 23일 대구여성가족재단에 기증한 은패물들. 대구여성가족재단 제공
전국 최초로 여성 국채보상운동 조직을 이끈 정경주 선생의 외손녀 김영주 씨가 23일 대구여성가족재단에 기증한 은패물들. 대구여성가족재단 제공

이어 김 전 교수는 23일 대구여성가족재단을 찾아 여성 국채보상운동의 상징인 은반지, 은비녀를 기증했다. 그가 직접 수집한 것으로, 친구의 어머니가 시집 오면서 친정어머니에게 받은 것 등 국채보상운동 당시와 시기를 같이 하는 은패물들이어서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김 전 교수는 자신의 기억 속에 외할머니는 감정 표현을 아끼는 근엄한 모습이었지만, 유독 외손녀인 자신에게는 자애로운 성품을 보여주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서울에 살다가 일 년에 두세번씩, 한달쯤 외갓집에 내려와서 지내곤 했다. 외할머니가 나를 무척 예뻐해서 무릎에 앉히시곤 했다. 손주들이 많았지만 사촌언니들이 나를 만지지도 못하게 할 만큼 특별히 아꼈다"며 웃음 지었다.

김 전 교수는 신문 기사를 통해 외할머니의 얼굴을 발견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고도 했다. 그는 "외할아버지 성함이 서병규이고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신 것은 알았지만, 외할머니 성함은 정 씨라는 것밖에 몰랐다. 기사에서 외할머니 얼굴은 물론이고, 집 사진을 보니 봉산동 외갓집이라는 걸 대번에 알겠더라. 어릴적 외할머니가 '산보 할래? 연당에 가자'라고 하시며 함께 연못가에서 물고기를 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은패물 기증을 통해 여성들도 주체적인 백성임을 주장하며 국채보상운동 참여를 독려했던 외할머니의 정신을 많은 사람이 생각했으면 한다고 했다.

김 전 교수는 "외할머니의 이름을 찾아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은패물을 기증하기로 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물건들이 앞으로 대구시민들에게 시민정신을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상징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국 최초로 여성 국채보상운동 조직을 이끈 정경주 선생. 대구여성가족재단 제공
전국 최초로 여성 국채보상운동 조직을 이끈 정경주 선생. 대구여성가족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