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공간

입력 2022-02-22 13:09:52

김영필 철학박사
김영필 철학박사

요즘처럼 거리두기로 공간의 제한을 받고 산 적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출입하던 일상의 공간이 도난당했다. 코로나로 일상의 공간이 탈취당하면서, 오히려 공간에 관한 담론들이 관심을 끄는 것 같다.

공간은 시간의 문제와 함께 철학에서 오랫동안 다루어 온 주제이다. 공간에 대한 오래된 선입견은 공간을 마치 인간과 분리된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앞산이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듯이. 물론 나는 산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하지만 산을 매일 오르는 사람에게나 산을 그리는 화가에게 그 산은 그의 실존과는 밀접하다. 물리적 거리는 그냥 자로 측량된 개념일 뿐이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나의 안경의 존재를 잃어버렸다. 주변 어디엔가 있겠지만, 나의 실존 가까이에서는 멀어졌다. 시력이 좋아졌다(?). 안경이 필요없을 만큼. 비록 가까이 있어도 내가 관심을 두지 않을 때는 물리적으로 멀어진다. 반면에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의 마음이 항상 그쪽으로 지향되어 있으면, 나의 실존 가까이 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물리적으로 멀리 있거나, 혹은 이미 이 세상에서 그 물리적 흔적을 찾을 수 없더라도, 그 사람은 언제나 나의 이웃으로 친구처럼 찾아온다.

이처럼 공간을 인간의 존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공간은 인간의 존재를 찍어내는 거푸집과 같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인간의 존재는 건축을 통해 장소화된다고 말한 이유이다. 도산서당에는 퇴계 이황의 존재가, 산천재에는 남명 조식의 존재가 장소화돼 있다.

인간의 삶을 공간 구성을 통해 탁월하게 표출한 영화가 '기생충'이다. 감독은 공간과 자본주의의 현실적 권력관계를 공간의 층차적(層差的) 구성으로 잘 표현한다. 지하와 반지하 그리고 지상으로 성층화된 공간 구성은 자본의 권력이 토해내는 어두운 현실을 비극적으로 그린다.

기우가 박 사장 집을 찾아가는 오르막길과 갑작스런 박 사장의 귀가로 혼비백산하여 어두운 지하통로로 내려가는 길이 교차한다. 근세가 빚을 지고 채권자를 피해 살고 있는 지하실과 박 사장의 거실을 연결하는 계단은 매우 가파르다.

특히 박 사장 집 공간에서 유독 강조되는 가파른 계단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자신을 권력의 상층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메타포'이다. 기택의 지하방에서 화장실로 올라가는 짧은 계단이 잦은 침수에 대처하는 실존의 도피처라면, 박 사장 집의 계단은 스스로 높이 올리는 데서 만족을 느끼는 권력지향적인 자위(自慰)의 메커니즘이다. 그 계단 아래 또 다른 실존(근세)이 거처한다는 사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낭만적 공간으로만 볼 수 없다. 올라가 내려다보면 12개의 방사선 도로에 둘러싸여 있다. 권력의 공간이다. 민중의 항쟁을 효율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파놉티콘이다. 인간이 공간의 수인(囚人)인 셈이다.